빌립보서를 읽으면서 2005년 12월 31일
보이는 것을 믿는 시대에 사는 인간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세월이 흘러왔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현재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자체만 보고 판단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옛 노래라도 부르는 것을 듣다 보면, 그 시절을 살았던 나이든 사람들은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 부르는 예전 노래를 들으면, 아이들은 옛날 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제가 어릴 때 들었던 노래이니 50년도 더 된 노래입니다. 요즘은 웬만하면 집집마다 차가 있어서 장에 갈 때도 차를 타고 가는데, 예전에는 교통수단으로 나귀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귀가 큰 나귀가 많았습니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당장 나귀를 몰고 와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귀를 직접 보여 주면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금방 믿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 대화조차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시대가 그렇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얘야, 엄마가 어릴 때는 전쟁이 나는 통에 생활이 어려워져서 밥도 못 해먹었단다.’ 라고 이야기하니까, 아이들은 ‘밥 못 먹으면 라면 끓여 먹지 뭐.’ 하고 간단하게 대답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는 계속 진행되어 왔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떤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사람의 조상이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믿었고 그 주장은 현재 인류학과 과학에 접목되어 버렸습니다. 예전에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실 때 그 가운데 개구쟁이들이 놀고 있으면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단다.’ 라는 말들을 웃으며 그냥 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상당한 충격을 받습니다. ‘아, 나는 어느 둑 다리 밑에서 거지 주워오듯 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짜 엄마, 진짜 아빠인 줄 모르고 우스갯소리로 한 말을 그냥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역사 속에 그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류는 어떤 길을 걸어 왔습니까? 옛날 글이 없던 시절에는 ‘윗대 어른들은 어떠했단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어떻게 했단다.’ 하는 이야기들이 구전되었고, 글이 만들어진 후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글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글이 소통되어서 전 세계가 서로 통하게 된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조상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또 그것을 믿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조상이 유인원, 고등동물 중 고릴라나 원숭이 같은 영장류라고 설명함으로써 아이들이 자라면서 인간의 조상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 인류학이나 역사학, 과학, 생물학 등의 학문에 이 주장을 섞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진화론이라는 테두리 안에 넣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걸핏하면 무엇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전부 그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에는 근본 씨가 중요합니다. 진화 과정에 대해서는 논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환경에 따라서 변하고 특정 기관이 발달하기도 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헤엄을 잘 치고 물을 덜 무서워하지만, 육지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 가면 무서워하는 수가 있습니다. 제가 꽤 오래 전에 울릉도에 갔을 때 조그만 아이들이 오리 새끼들같이 물에 동동 떠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헤엄을 얼마나 잘 쳤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오래간만에 수영하다가 죽을 뻔했는데 저 아이들이 물에 빠지지 않겠느냐 물었더니, 울릉도 사람의 대답이 외지에서 와서 잘난 체하며 수영하다 빠져 죽은 사람은 있어도 울릉도 사람들이 빠져 죽는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헤엄을 잘 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럴싸하더군요.
이렇게 사람은 환경에 따라서 발달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 씨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씨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세상의 모든 풀들, 나무들은 원조가 있습니다. 자라는 과정 중에 환경에 따라 굽는 방향이 약간 달라진다든가, 사람이 잘랐다가 다시 이식하는 일은 있어도, 그 근본은 그대로 있습니다. 유전공학 실험 중에 사람이 그 씨를 바꾸지 않는 한, 씨 자체가 변하지는 않습니다. 인간 세상에는 인간의 씨가 가장 중요합니다. 요즘 뒤따라 붙는 구구한 설명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이 문제인 것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어리석은 인간 세상에서는 인간들끼리 줄기세포니 뭐니 하면서 씨에 대해 나름대로 논하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 볼 때는 인간의 씨는 하나뿐입니다. 다른 어떤 동물과 견준다든지 비등하게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씨를 다른 동물의 씨와 같은 선상에 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기독교가 안고 있는 문제도 똑같습니다. 성경에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눅 8:11)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씨, 곧 말씀이 인간에게 어떻게 주어졌느냐에 따라 새 생명이 태어날 수도 있고, 그냥 배워서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배워 아는 것에만 그치는 수도 있고, 배우다가 어떤 말씀의 씨가 그 영혼에 심겨서 영혼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합니다. 영혼에 변화가 온 상태에 대해서는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지식을 알게 되어 영혼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은 교육으로 끝날 뿐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 찾아보면,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3) 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뜻으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인 행위나 종교적인 행위를 열심히 하고, 어떤 행사에 가담하고 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요 1:12) 이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심긴 사람에 한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칭이 붙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천 년간 기독교 역사가 흘러오면서 기독교 내부에서도 근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외부, 외형만 장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대단하게 꾸며진 기독교의 모습들이 세상에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은 성경과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시초’, ‘처음’을 상당히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내가 언제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하나님 말씀이 언제 내게 처음 주어졌는지가 중요합니다.
주의 말씀 첨 받은 날 참 기쁜 날이 아닌가 (새찬송가 249장)
주의 말씀 처음 받았다.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찬송가 138장) 하는 찬송가들을 보면, 옛날 사람들도 많이들 그렇게 변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고달픈 삶을 살던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의 씨앗이 자기 영혼에 떨어지게 되면, 하나님이 인생에게 하신 기이한 일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기이한 사랑이 내게 임했네 (합동찬송가 398장)
언젠가 예수께서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15:13) 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그 씨가 심긴, 데려갈 사람들을 찾으러 오십니다. 우리는 그 씨가 자기 영혼 속에 제대로 심겼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씨가 좋은 땅에 뿌려졌고, 길가에 뿌려졌고, 돌밭에 떨어졌다는 말씀으로 사람에게 교훈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 13:1-23 참조)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요한일서 3장 9절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여기서 사도 요한은 영혼 속에 하나님의 씨가 떨어졌다는 자부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근본이 그 속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 자기 생애에 대해 기록했는데, 로마서 7장에서 죄를 짓는 것은 예수 안에 있는 자신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죄가 하는 일이라는, 육신의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영혼의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근본은 그대로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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