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06년 8월 1일 저녁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에 나타난 가인과 아벨, 두 형제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해 발생된 문제는 개인에게 닥친 일이지만, 그러한 일이 역사적으로 우리 인류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 4:12) 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뒤에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창 4:15) 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성경을 통해서 비추어보고 또 실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나라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투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시작되는 과정에는 한 인물이 동원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 아담에게 주신 아들 셋의 계보에서 노아까지, 그 다음 노아의 세 아들 중 셈으로부터 벨렉의 시대까지, -벨렉은, 세상에 큰 지진이 있고 엄청나게 땅이 갈라졌던 시대에 살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아브라함까지 연결되는 역사의 과정이 창세기 5장부터 11장까지 나타납니다. 그러한 역사의 과정을 거치며 자식도 없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시작점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할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와 결부시켰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4)
이 시점 전후의 창조 과정과, 우주 전체의 운행 질서와 같은 문제들을 이스라엘 역사에 결탁시켜 놓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천체의 운행 질서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은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고대하며 기다리던 메시야를 바로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해 처형해 버렸고 그로 인해서, 유리하는 자가 된 가인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핍박받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해 주신 약속이 있기에 그 나라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31장 35절부터 보겠습니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5-37절)
우리는 대낮에 하늘에 떠 있는 태양, 또 맑은 날 밤이면 당연히 비취는 달빛과 별빛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바다에는 항상 파도가 밀려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자연(自然)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라고 말할 때의 그 ‘자연’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매일 보고 느끼는 천지만물의 법칙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만약에 그것이 멈춘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도 멈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운행 법칙이 계속되고 역사가 경영되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도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세상의 많은 과학자들은 인공위성을 띄우고, 우주를 탐지하려고 그 우주 공간에 무얼 하나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넓어 보이는 태양계도 이 우주 전체의 넓이에 견준다면 조그마한 점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지구의 모습이라고 하며 지구의 단면도를 그립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밑은 어떻게 생겼다고 추측한 것을 기록해 놓은 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지구에 아무리 깊은 구멍을 뚫는다 해도, 그 구멍의 깊이는 지구 전체의 크기에 비하면 아주 얄팍한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정도 깊이의 구멍을 뚫어 석유도 빼내고, 땅 속은 어떨 것이라는 별의별 추측을 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이 땅 속에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고 탐지할 수도 없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나, 현대 과학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실제 전체의 사실들을 두고 볼 때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겠다는 자신 있는 말씀을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도대체 이스라엘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기에?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시편 147:15-20)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이 속히 달린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1-4)
생명을 가지고 있는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거듭나는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힘이 바로 성경 말씀 안에 있고, 이 말씀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속히 달린다고 했습니다. 속히 달리는 이 말씀이 우리 개개인에게 전해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그 일은 이스라엘이 동원되지 않고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모세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 그리고 시편의 대부분을 기록한 다윗 왕과 같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딤후 3:16)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손으로 적어 나간 이 성경이 수천 년 동안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고, 유대 민족이 읽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이후에 이방인의 손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의 책으로 묶였고 그와 동시에 구약 성경과, 이 구약의 바탕 위에 기록된 신약 성경이 합해지게 됩니다.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라고 두 번 말씀하셨던 것처럼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이 합해져서 우리 귀에 들렸을 때, 우리는 예언의 말씀과 그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그 속에서 내 죄를 사함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 말씀이 세계에 전해지고 발표되고 있지만,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가지고 여러 다른 소리들을 부르짖습니다. 참 슬픈 현실입니다. 세상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노래하는 크리스마스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그곳이 이스라엘 땅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빙자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그것을 이용할 뿐입니다. 매일 들여다보는 TV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들, 다시 합쳐지고 지금도 살아 있고 무언가 투쟁을 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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