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 분당
다시 찾은 노래에 대한 마음
저는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이 한창이던 여름에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성악을 전공한 후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꿈꾸는 유학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가려고도 해보았지만, 사실 제 욕심만큼 의지가 강하지는 않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학교 4학년 때에는 같은 과 친구들 중에 레슨 생이 제일 많은, 소위 잘나가는 레슨 선생님이었기에 어느 정도 돈에 대한 욕심도 커질 대로 커져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버리고 유학을 선택하기에는 머릿속의 계산이 공부에 대한 순수한 마음보다 더 컸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쉽게 유학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 1년 동안 열심히 돈을 버는 데 정신을 쏟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여행 중에 독일에서 열리는 성경탐구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학교를 졸업한 후 저는 노래와는 상관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노래 공부보다는 그저 가르치는 아이들을 대회에 내보내 우승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학생들이 더 많이 느는 것이 제 목표가 되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로 성경탐구모임을 참석했는데 제가 성악을 전공했다는 것을 아시는 한 형제님께서 오후 강연 시간 전에 특별 찬송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참으로 난감했고, 식은땀이 날 정도로 떨리고 불안했습니다.
그때 그렇게 갑작스럽게 불렀던 찬송가는 469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였습니다. 그때의 제 마음과 그때 불렀던 제 노랫소리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제가 엉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제가 부른 것은 ‘찬송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사 하나하나가 그저 하나의 단어일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소리를 낼까.’ 하는, 한 마디로 좋은 소리로 듣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한 해 동안을 노래와 담 쌓고 살았던 터라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탐구모임 기간 내내 괜히 혼자 부끄럽고 창피해서 형제자매들과 마주치기조차 꺼려졌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어떠한 모임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심지어는 노래라는 것이 내 신앙생활에 문제를 안겨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경탐구모임이 끝나고 유럽여행을 계속 하는 동안, 저는 유럽에 있는 모임집들을 방문하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제 결심과는 상관없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찬송가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차라리 성악 전공자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를 잘 불러야 된다는 욕심 없이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송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찬송을 하기가 어렵다는 생각만 커졌습니다. 유럽여행 내내 이런 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기도 했고, 다시 노래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뜻밖에 시작된 유학 생활
그해 제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5월 말이었는데, 그때 우연인지 아닌지 제가 4학년 때 교환 교수로 오셔서 저를 지도하셨던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미국에 와서 공부를 더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메일이었습니다. 제 마음과 상황에 딱 맞았기에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로 오디션을 보러 갔습니다. 영어에 대한 준비도 없이 한 달 만에 유학을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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