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강해 중에서 2006년 4월 23일
야고보서에 나타난 ‘행함’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고, 또 유명한 기독교인들이 주장한 설교들을 보면 이상하리만큼 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서 때문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찬송을 한다든지 기도를 할 때, ‘믿음으로’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설교를 할 때에도 ‘믿음’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서에서는 믿음보다는 행함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행함은 가톨릭에서 훨씬 더 강조하는 것이고, 그에 대해서 상당한 주장을 내세웁니다. 또 행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신교에서도 행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야고보서 내용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야고보서 내용 중에 제일 잘 기억하는 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든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야고보서 2장에는 기독교를 제일 골머리 앓게 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17)
그렇다면 이 ‘행함’은 무엇입니까? 14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4-17)
얼마나 강력한 내용입니까. 믿는다고 하지만 행함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영혼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행함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 때문에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 엄청난 교리 싸움이 있었고, 교파 싸움이 있었습니다. 서로 이단이니 정통이니 하면서 따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에 대해서 상당히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행함을 부정해야 합니까? 성경에서 야고보서는 필요없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문제가 됩니다. ‘믿음으로만’이라는 내용과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약 5백 년 전에 구교에서 신교가 만들어질 정도로 엄청난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때 구교도들은 신교도들을 두고 분리되어 나갔다고 해서 열교(裂敎), 곧 프로테스탄트라는 낙인을 찍어버렸습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을 때 앞장서서 제일 크게 부르짖었던 마틴 루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루터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롬 5:1) 이라는 말씀을 확신한 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전해왔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야고보서는 별 필요 없는 책이었고, 지푸라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은 독일어로 전부 번역을 했지만 야고보서는 빼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구교를 믿던 반 아이들로부터 ‘프로테스탄트는 야고보서를 뺀 교회가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교회사를 다룬 책을 읽고 또 교회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루터가 야고보서를 번역하지 않았고, 가볍게 여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터도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루터가 나이 든 후에, 믿는다는 사람들이 점점 맥을 못 추는 것을 보고, ‘아, 그때 실수했구나. 믿음에는 행함도 따라야 하는 구나.’고 생각했다는 글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야고보서에는 다른 성경과 엄청난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서신들과 맞지 않고 크게 충돌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로지 믿음을 주장하고, 행함에 있어서도 야고보서에서 말하고 있는 행함과는 조금 다른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야고보서에서 주장하는 행함은 어떤 것이기에 그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믿음과 같이 행함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야고보서 2장 14절에 기록된 ‘행함’은,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만 하지 말고 배고픈 사람이나 양식 없는 사람에게는 양식을 나누어 주고 도와 주라는 식으로, 보편적인 행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행함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이런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했습니다. 확실한 믿음에 위배된 어떤 신앙 행위도 믿음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전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관계된 것을 지켜야 하고, 할례도 받고, 안식일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보았을 때 그러한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서 1:7-8, 3:1)
또 갈라디아 교인들을 친절하게 잘 가르쳤던 설교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갈라디아서 4:17)
속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많은 설교자들 중에는 유독 교인들과 친한 사람이 많습니다. 교인들 집에 찾아가서 기도도 해 주고, 그 외에 많은 것을 베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인들의 가정을 가가호호 방문해서 가르치고 전하는 내용이 좋기는 하지만,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자세히 보면 그러한 것들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이방인들, 즉 유대인이 아니면서 구원받은 사람들 때문에 유대인인 그리스도인들, 곧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 장로들이 총회를 열었습니다.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거기에 기독교 최고의 지도자들, 그 개인들은 겸손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제일 중요한 인물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행 15:10) 라고 하면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강조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그 중요한 총회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던 그 당시, 소아시아에서 로마까지 쭉 지나는 통로를 따라 복음을 전하고 나면, 후에 어떤 사람들이 각 가정에, 요즘 말하는 심방 비슷한 방문을 해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너희가 속은 거야. 어떻게 그렇게 쉽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라고 합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설명을 해 주고 가면, 사도 바울이 다시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4:17)
그들이 열심은 내고 있지만 그것이 좋은 뜻은 아니라고 합니다. 뜻밖의 선생이 나타나 열심히 해 주면 얼마나 좋고 반갑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는 것은 틀렸다,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 고 새로운 것을 가르쳐 줍니다. 처음 받은 믿음에 행위라는 것을 넣어서 분리시키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너희로 열심을 내도록 하는 것은,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가 이렇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증거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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