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숙 | 안성
깻잎이 밉다. 호박이 반갑지 않다. 고추, 가지도 마찬가지다. 가까이 사는 언니가 텃밭을 가꾸어서 이것저것 잘 챙겨준다. 주는 이의 마음을 알기에 안 받을 수는 없고, 받아놓고는 끙끙거리다가 일단은 냉장고에 넣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한번 냉장고에 들어가면 보통이 일주일이고, 일주일 뒤에라도 꺼내게 되면 다행이어서, 요리랍시고 썰고 볶고 쪄 본다. 그러나 요리에 영 취미가 없는데다가, 신선도가 이미 떨어진 재료로 무엇을 만들려니 맛이 훨씬 떨어질 것이고, 그쯤 되면 맛있는 요리가 되리라는 확신은 이미 바닥난다. 한두 끼 밥상에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다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무리 유기농으로 잘 가꾼, 팔뚝만한 가지라 해도 그쯤 되면 무섭고 밉게 마련이다. 요리해서 버리느니 하기 전에 버리면 양념이라도 아낄 수 있을 텐데 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어디 유기농 반찬 만들어 파는 데는 없나, 유기농 외식할 데는 없는가를 찾곤 한다.
이렇듯 부엌일에 관한 한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게으름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내가 딱 한 가지, 부지런을 떨고, 어느 곳이 되었건 한번 자리를 잡으면 서너 시간을 홀딱 보내고도 행복에 겨워하는 일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감과 책을 만날 때다. 중증이다.
내 삶이 이미 우회전을 해버린 이상, 세상 이야기와 책에는 별반 재미도 못 느끼고, 의미가 없다. 십 수 년 전에 요세푸스를 만날 때 그랬다. 요세푸스와 함께 예루살렘과 로마를 오가며 설명을 듣고, 같이 애통해 했다. 마사다에도 같이 있었고, 그 사건을 기록할 때도 옆에 있었다. 사도 바울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근래엔 나와 성정이 가장 닮아 보이는 베드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그냥 아무런 존칭이 없이 부르자니 어쩐지 버릇없게 느껴지기조차 한다. 그렇다고 베드로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도 멋쩍긴 마찬가지 아닌가. 그냥 꾹 참고 베드로라고 부르자.) 닭 울기 전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후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린, 그 찰나 같은 순간 주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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