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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 에스더와 페르시아

나창범 | 서울       성경책 중간쯤에 보면 성경 한 부분에 자기 이름을 남긴 여장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에스더서이다. 성경에 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아니라면 아마 이 에스더서의 이야기에 재미를 느낄 것이다. 유대 민족이 큰 고난에 처했다가 에스더의 기지로 인해 구출된다는 에스더서의 내용은, 인기 소설이나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그냥 꾸며낸 이야기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에스더서에는 당시 중동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며 에스더의 남편이라고 언급되어 있는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유대인의 생활상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서 에스더서의 배경이 되는, 페르시아 제국과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봄으로써 에스더서를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해 보기로 하자.       페르시아     페르시아라는 명칭은 이란 남서부 지방의 옛 명칭 파르스에서 비롯되었는데, 이곳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발상지였으므로 제국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기원전 9세기에 이곳에 정착한 이란 민족의 한 지파는 기원전 700년 경 아케메네스 왕조를 수립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아시리아가 망한 후 형성된 4국 체제의 한 축이었으며 티그리스 강 동쪽을 지배했던 메디아(메대)의 속국이었다.     기원전 559년에 즉위한 키루스 2세(고레스)는 기원전 550년 메디아의 수도 엑바타나를 점령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일으키고 종주국이었던 메디아를 지배했다. 이어 주변 지역의 정복에 나서 리디아를 정복하고(기원전 548년), 아울러 소아시아 연안의 많은 그리스계 식민도시를 수중에 넣었다. 기원전 539년 고레스는 신바빌로니아 제국 내의 불안한 정세를 틈타 바빌로니아를 함락하고 그곳에 끌려왔던 유대인들의 본국 귀환을 허가했다. 제국 내의 여러 민족이 갖고 있는 종교나 관습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의 방침이었으며, 이것이 페르시아 문화가 다른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원인이 되었다.     기원전 529년에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고레스가 사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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