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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 마다가스카르에서 받은 무엇보다 값진 복

이여진 |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에 온 지 벌써 햇수로 8년째이다. 나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마다가스카르에 와서 이곳에 있는 프랑스 학교에서 중, 고등학교를 마쳤다. 이제 프랑스 파리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여 8년여 동안의 마다가스카르 생활을 접고 프랑스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전에 아프리카 같지 않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낯선 아프리카에서     나는 1986년 5월 2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으로 이사를 갔고 그후 계속 인천에서 살았다. 구원받은 부모님 밑에서 부족함 없이 지냈고,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시절까지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학교에 다녔다. 해마다 성경탐구모임에도 참석했다. 초등학생 때에 참석한 성경탐구모임에서, 친구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나도 꼭 받아야겠다는 마음에 설교를 열심히 들었는데 설교를 듣던 중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것이 구원인 줄 알고 침례까지 받았지만, 이전의 생활과 달라짐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박 아저씨와 마다가스카르에 가신 것은 1998년의 일이다. 처음에는 어디 가셨는지도 모르고 그냥 일 때문에 어딘가에 가셨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1999년에 엄마가 두 주 동안 마다가스카르에 다녀오신 뒤, 오빠와 나에게는 의논도 하지 않고 마다가스카르로 이민 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한국에서 학교도 잘 다니고 있었고, 친구들도 많았고, 하고 싶은 서예도 하면서 잘 지냈는데, 왜 그런 곳에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원했던 중학교에도 합격한 상태라 더더욱 마다가스카르라는 곳에 가기 싫었다. 그래서 혼자라도 한국에 남겠다고 했는데, 부모님은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동물을 키울 수 있게 해 주겠다면서 3년만 살다 오자고 하셨다. 그래서 결국 마다가스카르로 가겠다고 했다. 친구들은 아프리카에 간다고 나를 많이 놀렸고, 추장까지 하라는 놀림에 정말 마다가스카르가 그런 곳일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가겠다는 내게, 박 아저씨는 그곳에서 아버지 혼자 너무 힘드시니 조금이라도 빨리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결국 내가 원하던 졸업장을 받고 난 뒤 1999년 2월에 엄마와 오빠와 함께 마다가스카르로 떠났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에게 외할머니는 바쁜 생활을 하시는 부모님보다 더 좋은 친구였다. 오래전부터 아프셨던 할머니는 공항까지 배웅하러 나오셔서 이렇게 보는 것이 마지막은 아니냐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국에서 홍콩과 모리셔스를 거쳐 세 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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