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 살다가 우연히 장사하는 중, 혹은 누군가의 소개로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다면, 처음에는 이 사람이 어디서 살던 사람인지 어느 지방 사람인지 혹은 어떤 집안 사람인지, 교육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과 오랜 시간 사귀며 살아가는 동안 불필요한 것들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생각을 서로 나누게 되고 무언지 모르지만 내 마음을 주게 되고 또 끌려옵니다. 말로는 사랑이라는 것이 표현되지 않았어도 분명히 그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을 압니다. 친구 같으면 우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인데, 그 표현이 너무 흔해졌고 너무 가볍게 쓰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믿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내가 어떻게 믿었으며 지금 또 어떻게 믿고 있는지, 또 그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이 내게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옛날에 믿었다는 어떤 것을 두고 믿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내가 예수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하고 자꾸 따지고 물어 들어가면 믿는 것인지 안 믿는 것인지 애매해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믿음’ 이라는 말이 나오거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그분에게 내 영혼이 맡겨지고, 또 내가 그분을 더욱 더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만큼 경험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과거에 어느 날인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들었는데, 그 뒤에 하나님의 사랑이 계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그 일들이 확실히 믿어졌을 때 - 말하자면 내가 믿었을 때, 내 마음 속에 믿어진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로 성경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성경 속에서 차츰차츰 그분에 대한 위대하고 귀한 사실을 더 깊이 발견해 나가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생활 속에서 배워갑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성경을 보면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 즉 우리 힘만 한껏 발휘된 믿음이라는 것은 잘못하면 수고만 실컷 하고, 하나님의 위로가 없는 허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자기 식의 종교적인 신뢰감만 갖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찬송가 434장)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 하나님이 내 배후에 계신다는 내용입니다. 갑자기 어떤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신뢰하는 어떤 실체가 없으면서 스스로 자포자기해 버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아무 뜻 없이, 생각 없이 포기한 상태에서 믿는다는 것을 믿음인 양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에 대해서 점점 알아가고 경험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믿음은 위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서 1:8)
바울 사도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는 것을 기뻐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로마인들이 예수를 믿은 믿음이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 믿은 믿음이나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장, 2장, 3장, 4장으로 이어지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믿음에 관해 설명해 놓은 것을 볼 때, 바울에게 이 편지를 받은 것은 로마인들에게는 상당히 좋은 기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바울 사도의 관심이 잘 나타나 있고, 로마인들이 예수를 믿은 흔적들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공부하다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부는 로마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인데, 후에 바울과 함께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8장 참조)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로마서 16장의, ‘누구에게 문안하라, 누구에게 문안하라’ 하는 내용을 보면, 편지를 받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으로 기성화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세속적인 것에도 물들지 않고 참으로 한 가족, 한 형제자매같이, 그야말로 우애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전체를 읽어보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이 보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이 믿음이 얼마나 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이 구절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내용보다는, 이들이 지니고 있는 귀한 믿음이 파급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그 믿음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지, 이것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을 다른 힘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는 그 믿음이 자랑스러웠던 바울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하나님께 감사한다”라고 썼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내가 과거 어느 때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 은혜를 입었다’ 하는 것처럼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그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는 그 믿음의 흔적이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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