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멕시코 성경탐구모임 2월 18일 오후
두 가지 이적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이름을 밝히고, 애굽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곳으로부터 이끌어 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마음속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애굽기 3:19-22)
이 물품은 나중에 광야에서 성소를 완성시킬 때 하나님 앞의 예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가지 이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니이다.”
“그것을 땅에 던지라.”
모세가 그것을 땅에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자, 뱀은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우리 인생은 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실패를 보았습니다. 나무는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받아야 할 심판과 저주를 의미합니다. 뱀으로 변한 것을 다시 잡았을 때 지팡이로 회복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졌던 저주가 예수의 손에 의해서 풀리고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모세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품에 넣으라.”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냈을 때, 그 손은 하얗게 문둥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이 문둥병에 든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문둥병은 첫째 아담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어온 죄의 병을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손을 두 번째로 품에 넣었다 꺼냈을 때는 손이 깨끗해졌습니다. 이것은 바로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죄가 사해지고 우리에게 걸린 저주가 풀리면서 인생들이 회복될 것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모세에게 이적을 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출 4:5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출애굽기 4:9)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모세를 지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유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두 가지 표적을 허락하셨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이 모세에 대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11:26)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
출애굽기는 그냥 한 장, 한 장 읽으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출애굽기 뒷부분을 보면 얼마나 복잡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4장부터 나타나는 출애굽기의 내용은 여인이 아이를 낳기 전에 고통이 시작되는 것 같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 구절, 한 구절 알기 전에 그 흐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모세가 이집트에 나타남으로 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됩니다.
보통 우리는 출애굽기를 대할 때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있었다는 식으로 대충 알고 유월절 이야기로 뛰어 넘어가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출애굽기 전체 줄거리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애굽기 전반의 흐름 속에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나타나실 때, 유대 민족의 후손들이 겪어야 할 많은 일들의 그림자가 들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두 번째로 이 땅에 오시기 위해서 준비되고 있는 역사적 시대적인 상황과도 닮은 점이 나타납니다. 유대 민족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후 40년도 못 되어 예루살렘은 멸망했습니다. 이 민족은 거의 1900년 가까운 시간을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예수를 죽인 살인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기독교인들에게 무수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유대인에 대한 핍박이 흐르는 가운데 교회 역사, 이 복음의 역사도 계속 그 후면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불과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인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되었고, 산업 혁명이 지나가면서 유럽에는 예술과 음악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그와 함께 19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에 흩어져 살던 많은 유대인들은 엄청난 재물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복음 전하는 일이 상당히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19세기 말 쯤 프랑스에서는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가 핍박을 받는 사건이 일어나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까지 시끄러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유대인의 역사상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사건들이 흘러갔습니다. <피아니스트>나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 전체를 쓸어버리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유럽에서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그 많은 역경들을 견디고 살아남은 후 1948년 5월 14일에 정식 국가로 독립했습니다.
그렇듯이 이 출애굽기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인의 손에서 빠져 나오기까지의 엄청난 싸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21:29-31)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 민족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엄청난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땅에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땅에는 그리스도를 다시 모시기 위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 땅에 오시기 전에 피바다로 한 번 변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크게 고통하며 진통한 후에 아이가 나오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도 그런 모습으로 경영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받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들은 구약 성경 선지서들에 계속해서 흐르고 있습니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이제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 서서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출애굽기 5:1)
그러나 바로는 말합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5:2)
바로의 이 말에는 이스라엘을 핍박하기 위한 마귀의 계획이 슬쩍 나타나 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을 핍박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들을 건지시고, 그들의 나라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고역은 더욱 심해집니다. 우리는 앞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는 일이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출 1:14 참조) 바로 창세기에서 미리 보았던 이 저주받은 행동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땅에서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만드는 벽돌의 숫자를 줄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출애굽기 5:7-8)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직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또 한번 이스라엘 땅에 있을 엄청난 환난, 즉 이스라엘 때문에 이 세상에 일어나게 될 엄청난 환난을 예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세상에 속한 개개의 영혼들에게 일어나는 싸움도 보여주는 것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