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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 거룩한 전쟁

- 태국 국경 지역 집회를 다녀와서   장화순       새로운 싸움의 시작     2004년 10월 말 박청 지역에서 열린 집회를 필두로 불기 시작한 태국의 열풍은 우돈타니, 푸켓 등 여러 지역을 강력하게 휘몰아친 말씀의 바람이었다. 그 격정의 시절이 지나간 후, 복음의 열기는 한동안 잦아든 것처럼 보였다. 발 빠르게 들려오던 소식들이 뜸해진 지 여러 달, 그러나 그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조용한 움직임들이 계속되어 왔다. 한 차례 세찬 폭풍우가 지나간 후 훨씬 청량하고 고요해진 대자연의 품에서 연둣빛 새로운 싹들이 쏘옥 올라오듯이, 지난 1월 방콕에 모임집이 마련됨으로써 태국 전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집회가 진행된 곳은 미얀마와의 국경에 인접한 지역이었다. 이 집회가 있기까지 교량 역할을 한 요셉 목사는 중국계 태국인으로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을 태국어로 듣고 중국어로 다시 한번 들은 이후, 한국의 형제자매들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태국 국경 지역의 고산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교회를 직접 시무하는 일 외에도, 미얀마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선교사들은 올 4월 경에 미얀마에서 집회를 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형제자매들은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선교사들이 먼저 자신의 믿음 상태를 정확하게 점검해야 된다고 간곡하게 권했다. 그리하여 그들을 위한 집회가 준비된 것이다. 이 집회에 참석하기로 예정된 사람은 요셉 목사 외에 미얀마에서 전도하고 있는 십여 명의 태국인 선교사들과 네 명의 미얀마인 선교사들이었다.     3월 7일(화) 아침 6시 40분 비행기로 여섯 명의 선발대가 먼저 방콕으로부터 북부의 큰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방콕의 모임집에서 일하고 있는 김수일, 주강로, 아몬 형제와 미국 LA에 거주하는 홍성구 형제, 니카라과 전도에 일익을 담당했던 전현식 형제 등이었다. 1시간 20분의 비행 후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솜삭 장로 부부의 활짝 핀 미소였다. 방콕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공격적인 찜통더위와 싸우면서 이틀을 보낸 것에 비해, 이곳의 더위는 훨씬 위세가 떨어진 것이었다.     솜삭 장로 부부와 뜨거운 악수를 나눈 우리 일행은 곧바로 준비된 승합차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려 집회 장소인 국경 지역으로 갔다. 미얀마의 국경과 선 하나를 경계로 인접해 있는 그곳은 도로 가에 줄을 지어 늘어선 각종 가게들이 액세서리와 열대 과일, 이국적인 세공품들의 다양함을 전시하고 있어 전형적인 관광지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일행이 한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푼 후,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간 호텔 식당에서는 미얀마 사람 파킴 목사와의 대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킴 목사는 미얀마 사람들을 위한 통역관으로 소개받은 사람이었다. 이번 집회를 준비한 형제자매들은 3일간의 집회가 끝난 다음 날의 개인상담 시간에 미얀마어로 직접 통역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방콕의 모임집에서 말씀을 듣고 구원받은 사무란 형제를 통해 알게 된 미얀마 목사에게 먼저 통역을 부탁했으나 그가 사정이 있어 도울 수 없다며 거절하고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으니, 그가 바로 파킴 목사였다.     호텔 2층에 마련된 강연 홀,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고산지대에 빼곡히 들어찬 흰색의 네모난 집들은 미얀마의 풍경을 목전에 나타내 보이고 있었다. 두 나라를 가르는 국경선에는 거대한 건물이 문지기처럼 버티고 있었는데, 그 건물의 중앙에 양쪽 나라의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도로가 아가리처럼 뚫려 있었다. 왕래하는 사람들이 거쳐야만 하는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면 곧바로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는 미얀마 땅으로 진입하는 입구였고, 다리 아래로는 하천 같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몬과 김수일 형제가 프로젝터용 스크린을 비롯하여 영상 설비와 마이크 상태, 라디오 송신 등을 점검하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주강로 형제와 전현식 형제가 계속 파킴 목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중국계 미얀마인인 파킴 목사는 1990년대 초반에 미얀마의 수도인 양곤에서  장로교 신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약 10년째 미얀마의 국경 지역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다. 현재 그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120명 정도이며, 자신은 교단 내 세 명의 관리자 중의 한 사람으로 미얀마 동부지역 42개 교회를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파킴은 이번 집회에 자신의 동료 교역자들 10여 명을 데려올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방콕에서 2차로 출발한 권 사모님과 이용화, 폴 백 형제님을 비롯하여 능 목사, 정외숙, 오현숙, 홍현숙 자매 일행이 호텔에 들어선 것은 오후 6시 30분경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 호텔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다음 날의 일정을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요셉 목사도 함께 참여했다.     해외전도에서 가장 큰 장애로 대두되는 것은 언어의 장벽이다. 파킴 목사가 데려오는 미얀마 사람들은 태국어를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파킴 목사가 <성경은 사실이다> 영어 더빙 테이프를 미얀마어로 동시통역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판단되어, 다음 날 상황을 봐서 처리하기로 했다. 어쩌면 누군가가 단상에 서서 이들을 위해 영어 설교를 직접 해야 할지도 몰랐다.     3월 8일(수)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할 예정이었던 집회는 9시 20분이 되어도 시작되지 못했다. 오는 사람들이 도착하는 대로 속속 아침 식사를 하게 해야 했고, 식사 후에는 집회 신청서에 몇 가지 사항을 기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킴 목사는 미얀마 사람들 열두 명을 데리고 왔다. 그들을 위해 급히 강연 홀을 하나 더 빌려서 책상과 의자를 배치하느라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되었다.     드디어 사람들이 모두 모였을 때, 이용화 형제님은 마이크 앞에 서서 이 집회의 서막을 열었다. 이용화 형제님이 영어로 말한 내용을 아몬 목사는 태국어로, 파킴 목사는 미얀마어로 통역했다. 한국인 일행 모두가 일어나 인사를 한 후, 10시 경이 되어 파킴 목사가 이끄는 미얀마 사람들 열두 명이 다른 강연 홀로 옮겨갔다. 전체 상담을 하는 날까지 정확하게 3박 4일의 일정이 두 개의 강연 홀에서 시작된 것이다.     쌍방을 오가며     권 목사님의 <성경은 사실이다> 1번 태국어 더빙 말씀이 시작된 강연 홀, 프로젝터를 통해 DVD의 영상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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