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06.04>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토론- 세 번째

      매주 성경 강연 이후에 강연자와 청중들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포럼은 몇 명의 질문자들이 질문을 하면, 강연자가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 포럼을 통해 의문점을 풀고, 포럼의 주제에 대해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소리포럼은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Q 부자는 어느 정도 교육도 받았고, 교양도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A 성경에 부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표현된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2:2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잠언 14:13)       이 말씀들은 홧병이나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자에게는 종교인, 또는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마음, 다른 사람을 깔보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교만입니다. 실제로 교만하기 때문에 교만한 것이 아니라, 교양이나 인격이 감싸고 있기 때문에 인간 본성이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전부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옷’ 안에서 행동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외형을 중요시합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내면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사로 보기에 부자가 싫었다면 먼 곳으로 가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부자의 집 문간에 누워 있었습니다. 내면적인 문제이든 외면적인 문제이든 상관없이 나사로는 부자와 맞닥뜨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인생 가운데 피할 수 없이 두 형상이 맞닥뜨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는 부자가 호화롭게 잔치하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나사로라는 사람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이 비참한 모습 자체가 하나님의 선에 도달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자는 어떤 면에 하나님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종교인이라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부분이 자기중심적이고, 삶의 중심을 자기와 가족에게 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요일에는 예배당에 갑니다. 자기가 번 돈으로 헌금하고 가난한 이들을 동정하고 자선을 베푸는 데 만족하며 종교 생활을 합니다. 그런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거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시 17:14)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러한 인간의 삶의 목적은 순수하게 인간적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와 같은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달랐습니다. 그는 세상의 것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해진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도우심’이라는 이름의 나사로는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비참해도 그 모든 힘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지가 아닌 부자라 해도 나사로와 같은 마음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묻히려고 사 놓은 무덤은 보통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도시 가까운 곳에 부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곳에 무덤을 미리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원래는 그의 마음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



* 온라인 쇼핑몰

글소리 PDF 웹북 펼쳐보기


* PC 버전 홈페이지 전환



Copyright (c) 2025 (주)많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