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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답게 살 것을 부탁하심

- 요한복음 15장 1-27절 1998. 2. 14 강연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요한복음 15:1-27)       내가 참 포도나무요     이제 우리는 예수께서 종종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눅 12:32 고 하신 대로, 적은 수의 사람들, 특히 가룟 유다가 떠난 후 곧 다가올 예수님의 죽으심을 안타까워하는 열한 명의 제자에게 말씀하신 이 요한복음 15장의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전에 요한복음 5장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드셨다’는 이사야 5장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여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심고 망대를 세우고, 또 술틀도 만들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를 읽어 보면 포도나무 가지만큼 쓸모없는 가지도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치 않았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에스겔 15:1-5)       포도나무는 구불구불해서 다른 나무처럼 재목으로 쓸 수 없으니 열매를 맺는 일이 아니면 쓸데가 없는 나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도 예수께서는 포도나무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에는 포도나무가 열매 맺기를 바라는 주인의 소망이 아주 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한복음 15:1)       ‘참’이란 말은 아무 데나 쓰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어떤 말에 ‘진정한’, ‘진짜’와 같은 뜻을 더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하신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의 생애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언젠가 자신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실 그 일을 포도나무에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포도 열매의 즙을 짜서 만든 포도주가 바로 자신의 피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찬송가를 부를 때, “거기 무궁한 세월이 흘러갈 때 고난 풍파가 일지 않네” (찬송가 232장) 하며 하나님 나라에는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사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고난을 그 가사에 섞어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런 고생 안 할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찬송가에서 말하는 고난은 그런 고난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겪는 고난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서 겪는 고난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고난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29) 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에 포도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농부는 포도나무가 잘 자라기를 원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2)       이 말씀은 과실을 맺는 가지가 과실을 더 맺게 하기 위해서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깨끗하게 잘라낸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제해 버린다’는 말은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되면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한편으로는,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거듭났지만, 내게는 아무 열매도 없는 것을 보니 이제 나는 지옥에 가겠구나.’ 하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원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손에서 쫓겨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는 주님께서도 이 사람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책망하십니다.     그렇다고 ‘아,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과실은 전도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과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5:22-23) 하는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혼자서는 이러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혼자서 무엇을 오래 참는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혼자서 화평하고, 혼자서 누구를 사랑하겠습니까? 성도들이 서로 섞여서 교제를 가지고 서로 교통해야 용서가 무엇인지, 교만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또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씻어줄 수도 있습니다. 혼자서 열매를 맺는다고 어느 산꼭대기에 올라가 ‘주여’ 하고 죽을 때까지 소리쳐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입니다. 포도 열매는 복숭아나 사과처럼 한 알씩 열리지 않습니다. 여러 알이 주렁주렁 달려서 한데 모여 붙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제의 모습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 하신 말씀처럼, 성도들이 정상적인 교제를 가지면 그 가운데 성령의 일이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보고 배우고 따르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가지들로부터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분이십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6:45) 하는 말씀이 있듯이, 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했고, 그분을 알고 또 믿게 했습니다.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건져 주셨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멀어집니다.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버렸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고 들은 적이 있다 하더라도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엡 5:11) 하는 말씀처럼,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옥에 간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한복음 15:3)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날,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요 13:10)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확실히 믿은 사람은 영원히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의 피는 보배로운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벧전 1:19 참조) 또 이런 찬송가도 있습니다.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찬송가 200장)       예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의 증거는 바로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인인 나의 죽음을 대신하신 것이며, 그의 피 흘리심은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의 부활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증거로, 훗날 내가 그의 몸과 같이 변할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하는 말씀대로 우리는 깨끗해졌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거룩한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죄 속한 은혜의 찬송을기쁘게 부름은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찬송가 189장)       어린양 예수님의 그 피로 우리는 완전히 씻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하는 말씀을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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