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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사도행전 2장 37-47절 1999. 1. 30. 강연     유대인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     우리 모두는 이 말씀을 읽을 때 각자의 위치를 생각하며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을 대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러한 말씀을 하셨는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표현되어 있는가 하는 등의 많은 의문들이 일어납니다. 특히 사도행전을 읽을 때는 말씀이 전해지던 그때,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6) 고 했는데, 누가 정녕 안다고 했습니까? 한국 사람입니까, 어느 다른 나라 사람입니까?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기록된 이 말씀은 오직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또 이보다 먼저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행 2:14) 라고 말한 일도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 “유대인들”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뉜 가운데, 유다 땅에 사는 사람들만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때는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이들과 각국에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유대인’ 혹은 ‘이스라엘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피를 이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 1:1-2) 하는 마태복음 1장 내용을 보면, “유다와 그의 형제”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열두 형제들이 모든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열두 지파의 후예가 이스라엘 사람들이므로, 그 사람들이 곧 ‘이스라엘 온 집’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라고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말씀은 물론 ‘이스라엘 온 집’을 중심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인들 중에는 아브라함의 피를 잇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 예루살렘에는 빌라도를 비롯한 로마 군인들이 있었고, 많은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 때에도 침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군인들이나 세리들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눅 3:12, 14) 하고 세례 요한에게 질문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또 예수께 자기 아들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백부장도 있었습니다. 어떤 백부장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눅 23:47) 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사도행전 2:10)       여기서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은 혈통으로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많은 다른 민족들에게 유대교에 입교하도록 권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유대인을 감시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예수님의 때까지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그런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는 이스라엘인을 향해서 말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 천사가 세례 요한의 아버지가 될 사가랴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고, 그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미리 알려 준 내용입니다.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누가복음 1:17)       이것은 세례 요한이 태어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사람이 될 것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에는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대를 이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장차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게 될 이방 사람들도 포함됩니다만, 이 역시 먼저는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 다음 누가복음 1장 67절부터 70절까지 내용을 봅시다.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하나님이,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내어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할 백성들을 예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다음 누가복음 1장 76절부터 79절까지 읽어 봅시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얼마나 많은 아브라함의 후예들이 준비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랐던 그리스도, 대망의 메시야가 오시면 그의 백성이 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미리 베풀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미리 계획을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가 말한 약속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들에게 그때 먼저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은 항상 유대인을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유대인들 가운데 거하는 이방인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출 12:48) 한 유대인들의 율법을 보면 유대인들과 같은 혜택을 받는 이방인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유대인과 함께 거하는 이방인 종들도 안식일을 지켜야 했습니다. 종들도 안식일에는 일을 쉬었습니다. (출 20:10) 참조 그만큼 엄격하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 2:14) 고 하면서, 요엘서 내용을 설교합니다. (행 2:16-21 참조)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22)       여기에서도 또 누구에게 말했습니까? 먼저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항상 성경은 순서를 정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2:36)       사도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에게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라고 말하였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도 그만큼 간곡한 마음으로 자기 동족들의 구원과 또 그들의 회개를 바랐습니다. 이 말씀을 전하던 시절에는 아직까지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간 빛이 있기는 했지만, 문이 활짝 열리지는 않았을 때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아야 우리가 로마서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로마서 11:17-18)       우리가 우리 위치를 확실히 알아야 주님을 찬양할 때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사실에 더욱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이방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 15:27) 라고 했던, 그 겸손하고 낮추어진 마음이 바로 우리에게 본이 되는 마음일 것입니다. 탕자가 자기 아버지를 떠나서 살다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나는 여기에서 주려 죽겠구나.’ 하고 돌아설 때,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낮아지고 부서지고 형편없는 자기를 발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눅 15장 참조) 우리도 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 아버지시여, 당신 앞에 내가 섰을 때 나는 약속도 없고 율법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한다면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숙연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너희가 못 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2:36)       2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성경은 여러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우리는 으레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알고 있고,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처음 전해지던 그때, 베드로가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라고 이스라엘 온 집에게 말할 때는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세례 요한의 침례를 받거나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침례를 받은 사람들, 또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비판했던 사람들, 그리고 많은 나라에 흩어져 살다가 유월절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유대인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하신 이 말씀을 선뜻 납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는 나사렛 사람이요,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 1:46) 고 할 정도로, 예수는 주가 될 수도 없고 그리스도가 될 수도 없는,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절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그들이 바라는 구세주가 따로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사야 52:13)       선지자 이사야가 이 말을 한 때는 사도 베드로 때로부터 약 750년 전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설명한 때는 지금 우리 시대로부터 약 2천 년 전입니다. 그때 그 시절에 많은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망은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주와 그리스도”가 따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네가 거룩하신 자의 아들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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