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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 이방인인 우리가 받은 생명의 떡

제41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09년 7월 30일     우리 각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이스라엘     호세아서 1장 2절부터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호세아 1:2-11)       우리는 먼저 창세기 3장에서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고 그것을 남편 아담에게 준 하와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창 3:15) 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역사를 타고 내려와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민족이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또 우리는 에스겔서를 통해, 부정한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지고 세상에 살면서도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 중에는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겼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구약 성경을 기록한 마지막 선지자 때부터 신약 시대에 세례 요한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스라엘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졌습니다. 이때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믿고 행하는 바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그 열심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좋다고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계속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 참선지자이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그러한 행동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나 2천여 년 동안 세상을 떠돌며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은 것 같았던 그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시온 운동, 그리고 유럽에서 일어난 복음 운동에 힘입어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로서 다시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호세아서는 그 이스라엘 민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호세아에게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호세아를 곤란하게 하려고 형편없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남편 되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먼 땅에서 불러내어 민족을 이루게 하고, 그 민족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그 역사를 주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그들을 연모하였고 그들에게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다스리라”고 하시며 아담에게 주셨던 주권을 되찾기 위해서, 잃어진 모든 영혼들 속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장해 오셨습니다. 구약 성경은 그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너무나 악한 길로 달려갔습니다. 그랬을 때 그 일을 한탄하고 가장 괴로워하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셨습니다. 호세아 1장 10, 11절 말씀에서처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그들을 잊지 못하고 다시 살려내십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구약 성경에 많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말씀에 붙잡힌바 되어 지금도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줄도 모르고 왕 중 왕으로 다스리러 오실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 (벧전 1:11) 중에서 앞의 고난은 잊어버리고는 자신들을 비참한 역사 가운데서 건져 내어 어루만져 주실 분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들이 영광중에 오시는 주님을 보며 그분이 2천 년 전 자기 조상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온다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봅시다. 나는 어떻습니까? 선지자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 고 했는데, 우리는 그 마음을 내 속에 담고 일평생 이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음란한 여인, 또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을 취하여 낳은 자식들의 모습과 내 마음속에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죄악의 사상이 과연 서로 다른 것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죄를 보시고 괴로워하고 한탄하셨던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는 똑같이 한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속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을 대하면서 우리는 그 속에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고, 우리가 성경을 읽는 목적입니다.     호세아서 2장 8절부터 보겠습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세아 2:8-15)       2장에는 1장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다 내가 준 것이며, 이스라엘이 누리던 그 모든 영광, 심지어는 그들이 바알을 섬기는 데 쓴 은과 금도 내가 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 속에 섞여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돈, 학벌, 직업,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신 이 세상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었고,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마찬가지입니다. 일평생 쌓아가며 모은 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온갖 수단과 방법, 그리고 보고 즐기는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상태를 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그대로 설명하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모든 것으로 이방신들을 섬기던 이스라엘의 음란한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며, 이 말씀은 나를 향해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이런 말씀을 두고, 그래도 나는 하나님 앞에 조금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옆에 앉아 있는 친구보다는 내가 좀 낫고, 성경 말씀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내가 좀 낫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성경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계획과 항상 악한 것이 솟구쳐 나오는 속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 모두 다 죄인입니다.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2) 하는 말씀대로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15장 1절을 보겠습니다.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마태복음 15:1-2)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고 먹어야 된다는 율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성경을 해석한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며 구전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거기에 붙는 많은 설명들을 장로들의 유전으로 생각하고 귀하게 여겨, 그것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형편없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예수님께 고소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에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규례가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음식을 그냥 덥석 집어 먹으니 왜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마태복음 15:3-5)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하신 것은 율법의 말씀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반박하십니다. 엉뚱한 말씀으로, 그 자리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 말씀으로 정확하게 대답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그 율법을 이루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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