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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크신 일

사도행전 2장 14-36절 1999. 1. 23 강연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2:14-36)       베드로를 쓰신 하나님     이 내용을 읽으면 글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나님 앞에 마음이 가까이 있을수록 이 성경이 더 진실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끌리는 것 같습니다.     14절부터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사도행전 2:14)       이 말은 평범한 말 같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 높여 가로되”라고 할 때, 우리에게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이 일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까?     베드로는 이때로부터 50일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비겁한 행동으로 인해 크게 좌절했습니다. 인생 실패의 쓴 잔을 누구보다도 크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의 동료 가룟 유다는 비겁한 짓을 하다 자살해 버렸지만, 이 사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끈기가 있거나 참을성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미워하는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며 배신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사실 예수께서 먼저 예고하셨던 일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누가복음 22:31-32)       베드로는 자기 용기만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과시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마 26:33) 라는 맹세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미리 이야기하신 말씀이 그 사람에게 적중했습니다. 예수께서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셨던 (마 26:34, 막 14:30, 눅 22:34, 요 13:38 참조) 말씀대로 그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뒤에 닭 소리를 들었을 때, 이 사람은 아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고뇌를 맛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자신에 대해 스스로 환멸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괴로워하던 베드로가 이제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아주 담대하고 힘 있게,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에게 지금 우리가 가진 것 같은 성경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담대하게 일어서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교훈이나 가르침, 사람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이 미쳐서 자기를 잊어버렸거나, 무언가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지껄이고 떠들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천하 각국에서 몰려들어온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 앞에 서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꾸밈새 있고, 준비된 설교집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 강론을 연습했다거나 훈련을 받았던 것도 아닙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삼 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설교를 했다는 내용은 성경에 없습니다. 설교자로서 설교 연습을 했다는 내용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그는 사고뭉치처럼 보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에 서서 담력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순수하게 하나님의 힘이 아니고는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 자신의 힘으로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일은 예수께서 이로부터 열흘 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신 약속대로 된 것입니다. 베드로나 제자들은 자신 없다고 하며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신 (눅 1:37 참조) 말씀이 베드로에게 역사적으로 적중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보다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 상식도 베드로보다 훨씬 낫습니다. 베드로는 삼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녔다는 것밖에 없는, 전직 어부입니다. 그는 자기가 섬기던 대상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힘이 빠져버렸습니다. 다시 살아나셨다고는 하셨지만 마음속에 그 사실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고, 무언가 몽롱한 가운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이랬던 사람에게 어떤 힘이 채워졌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에 미약하게나마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복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해 봄직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우리가 세상 천지에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라는 말씀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제가 베드로였다면, 저는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태, 당신은 나보다 더 많이 배우지 않았습니까? 세리까지 하셨으니 글도 좀 읽을 줄 알지 않습니까? 이번 예루살렘에서는 당신이 한번 강론하시지요. 아니면 정숙하고 배울 점이 많은, 학자다운 요한 당신이 한번 이야기하시오. 당신은 같은 동료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이오.”     저였다면 좌절감에 자꾸 뒤로 물러섰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인간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로 쓰였습니다. 우리가 그릇에 무언가를 담으려고 하는데, 그 그릇에 내가 원하지 않는 다른 것이 묻어 있다면 그릇을 씻은 후에 담지 않겠습니까? 베드로라는 그릇 속에는 베드로라는 사람이 꽉 들어 차 있었습니다. 그 베드로를 껍질째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었기에 베드로는 온통 다 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인들이 마음을 비웠느니 하는 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위해 이 사람이 비워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렵고 괴로운 일이 갑자기 닥쳐왔을 때, 집안에 폭풍이 불어왔을 때 잘못하면 운명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냥 재수가 없어 생긴 일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일 뒤에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 나를 어느 쪽으로 몰아가는 바람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도 사자로 삼으신다고 했습니다. (시 104:4 참조) 그렇다면 베드로가 겪었던 모든 태풍도, 그를 어느 자리에 앉히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 베드로를 다시 바라봅니다. 비록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베드로라는 성격의 인간이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라고 말할 정도로 확실히 주님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또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 라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속에서 베드로를 비워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것으로 무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별로 대단한 것 같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는 주님이 말씀을 통과시키는, 주님께 꼭 필요한 ‘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 당신께서 필요한 곳에 나를 쓰십시오.’ 하는 마음은 없었습니까? 우리 자신을 드려 본 적이 있습니까? 베드로만 위대하고 말 것입니까, 아니면 미약하나마 ‘나의 갈 길을 내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시여, 나를 한번 써 주십시오.’ 하겠습니까? 우리는 베드로만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베푸신 사랑을 내가 받았으니 나를 통과하신 주님의 말씀이 내 이웃이나 가족,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전해져 그들이 구원받는 일에 쓰이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을 너에게 맡기리라” (마 25:21, 23 참조) 하셨던 주님이 그 작은 일을 내게 맡기셨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고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처음 복음을 깨달았을 때, 저는 상당히 오랫동안 뒤꿈치를 땅에 대지 않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광대뼈가 아플 정도로 많이 웃고 살았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무언가 가진 것 없어 보이고 대단치 않은 것같이 보였겠지만, 제 속에는 웃음이 꽉 차 있었습니다. 큼직한 성경책 한 권을 안고 다니면서 ‘세상에 이만큼 큰 보석을 안고 다닌들, 나만큼 마음이 편하고 즐거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 찬송가를 참 많이 불렀습니다.       이 평안함 내 맘에 받은 뒤에 슬픈 마음 간 데 없고온 세상은 구주를 찬양하는 듯 아 영광의 주님 예수 주 항상 계시네 내 맘속에 주 항상 계시네 아 기쁘다주 내 맘에 계셔서 위로하시네 아 내 주 예수 어찌 떠날까  (합동찬송가 417장)       얼마나 좋았는지, 이 노래가 삶의 행진곡 같았습니다.     어떤 때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 부탁하자며 같이 기도하자고 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걷지 못하던 사람이 좋아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나타나면서 그쪽으로 빠지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는 말씀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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