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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 우리의 모든 죄를 덮은 창조주의 피

2009. 7. 29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강연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육체를 통해 보는 창조의 섭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예레미야 4:1-4)       우리가 성경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 장씩 보다 보면, 먼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나라 애굽에 가서 이방의 왕들을 섬기다가 모세라는 한 지도자를 만나고, 그 지도자의 손에 이끌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곳으로 돌아간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을 벗어나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행해야 할 것과 행해서는 안 되는 것, 그 두 가지를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율법에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이러할 때는 이렇게 해도 되고 저러할 때는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 나뉘는 것처럼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정확하게 구별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한 가족에 불과했지만, 애굽에서 나올 때는 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한 민족을 이루어서 애굽에서 나온 사건, 즉 유월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별해 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11:7 참조)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께 복과 약속을 받았지만 애굽으로 온 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을 이방인들과 뒤섞여 지내며 그들은 애굽의 생활양식에 따라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한 지도자를 통해 그들을 구별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를 유월절이라는 한 날에 부여하셔서 그들에게 양을 잡게 하셨습니다.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에서 난 모든 장자들을 죽일 때 보호를 받았고, 그렇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렇게 구별된 이들이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넜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치 씨앗과 같은 말씀, 바로 율법을 주십니다. 율법도 이스라엘 민족을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구별되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방 민족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그 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혼의 양식이 되고 또 육체의 건강이 되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 순서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창조 넷째 날에는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 1:16 참조) 물론 넷째 날의 창조 과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리되어 가는 자연 현상을 땅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질서가 잡혀감에 따라 보이게 된 현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거기에 빗대어 살펴보면 이 두 큰 광명의 관계, 그리고 그와 함께 맞물려 그 중간에서 돌아가고 있는 이 땅의 관계는, 이 세상과 하나님과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3) 하신 말씀처럼 지금 이 세상에 내리쬐고 있는 태양빛, 끊임없이 폭발하며 빛을 발하고 있는 저 태양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그림자입니다. (딤전 6:16 참조) 그리고 우리는 이 땅을 밟으며 살고 있습니다. 태양빛을 받아 캄캄한 이 땅에 빛을 비추어 주는 역할을 하는 작은 땅덩어리인 달은 시편 89편에서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같이” (37절) 라고 하신 말씀대로, 증인처럼 이 하늘을 떠다닙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세상에는 많은 구전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문명을 발전시켜 가며 하늘에 닿으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내세를 꿈꾸며 죽은 사람을 썩지 않게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많은 생각들과 사상들, 생활양식에 젖어 흘러가는 이 세상 역사 속에 하나님은 말씀을 두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달처럼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밤에 보는 달빛은 달이 스스로 발하는 빛이 아닙니다. 태양에게서 받은 빛이 달에 반사되어 우리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정하셔서 그 나라에 말씀을 두시고, 그 말씀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나라의 역사를 주장해 가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이 땅에 살면서 성경 말씀을 바라보는 나는 어떠합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겪은 일들과 그들이 얻었던 복은 내 마음에 어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낮에 햇빛을 보고 저녁에 달빛을 보며 평생을 삽니다. 그러나 이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면 저 태양빛이 도대체 무엇이고, 달빛은 또 무엇이며, 뉴스에 나오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무엇이고, 이 성경 말씀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희미한 상태에서 살다가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 역사와 진리, 우리 육체 속에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발견해 나가다 보면, 내가 오늘 하루 동안에 보고 겪은 작은 일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하시기 위해 동원하신 도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두 가지 큰 악을 행했다는 예레미야서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면서 그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던 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르기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 2:13) 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태도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았을 때 예레미야 4장의 말씀이 나에게도 이루어집니다. 예레미야 4장에는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3, 4절) 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마음 가죽을 베라는 것은 우리 마음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육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우리 몸속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 속에는,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미토콘드리아가 평균적으로 1700여 개 정도 들어있다는 것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미토콘드리아를 담고 있는 세포와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막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세포보다도 훨씬 작은 그 미토콘드리아 하나 안에도 세포와 비슷하게 막이 있고, 주름이 잡혀서 길처럼 생긴 부분이 있고 그 길 사이에 또 공간이 있습니다. 그 길들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세상 지식은 점점 깊어졌지만, 아직도 그 속에 숨어 있는 많은 비밀들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미토콘드리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영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매트릭스’라는 성분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버지의 유전인자와는 관계없이 모계로부터만 유전되는 유전인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 유전인자는 에너지를 합성시키는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에너지를 합성하는 일을 합니다. 세상에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지식을 점점 깊이 파고들어 가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섭리를 이해하기는 역부족입니다.     사람의 몸속에서 물 분자가 세포 속으로 들어갈 때는, 세포막에 끼어 있는 계곡처럼 생긴 문 앞에 나란히 줄을 섭니다. 그 문에는 물 분자만 들어갈 수 있는 한 길이 있어서 물 분자가 하나씩 세포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눅 13:24) 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넓은 문이 많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과 성경에 대해 듣고, 성경의 많은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그 세상의 역사를 경영해 가신다는 것을 듣고, 그 역사와 창조의 한 중간에 서 계시는 분 성자 하나님, 즉 이 세상에 육체를 쓰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 우리는 삶의 방향을 그 좁은 문을 향해 바꾸게 되고,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세포 안에서만 일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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