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날마다 회당과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합니다. 바울과 같이 변론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죽으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사람은 다시 부활한다’는 희망적인 논리를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어서 썩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바울은 천지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고, 인간의 마지막 회복도 있다는 내용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역사를 이어오며 갖고 있었던 부활의 논리이며, 바울도 구약 성경을 기초로 이러한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바울은 부활에 대한 이론을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이런 진리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사도행전 17:19-21)
사람들이 바울을 붙잡아 ‘아레오바고’라는 곳에 끌고 가면서 바울이 말하는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바울이 너무 새로운 것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 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철학의 기초를 세운 사람들을 배출한 도시입니다. 아테네는 당시의 모든 정치, 뉴스, 철학의 중심이 되는 대도시였고 모든 이론과 사상을 주제로 항상 토론이 전개되는 곳이었습니다. 학식이 있는 사람들도 많이 모였습니다. 이 아테네 사람들은 가장 새로운 뉴스거리에 관심을 갖고 지낼 때였습니다. 22절,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아테네 사람들이 ‘네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바울에게 질문하니까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울은 원래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로마가 지배하던 소아시아 길리기아라는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고 학자였습니다. 그런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23절,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이런 저런 갖가지 신의 조각상이나 신전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예를 갖추어 제사를 지냈고, 혹시나 빠진 신이 있을까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까지 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네테 사람들에게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한 술 더 떠서 이들에게 알지 못하는 그 신을 알게 해주겠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24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지금도 각 나라의 교회마다 예배당을 지어 놓고 그것을 성전이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이 지구상에서 오직 예루살렘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통해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렘 7:4) 하는 말씀까지 겸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아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았던 바울은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 손으로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어놓은 건물 안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더 크고 더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25절,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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