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 일산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32절 말씀으로 말미암아 저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1986년 3월 14일, 제가 24살 때의 일입니다.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상황들이, 들었던 말씀들이, 심지어 제가 열흘 내내 앉아 있던 자리까지도 마치 사진을 보듯 생생히 기억납니다.
저는 1963년 10월 14일, 딸만 넷인 딸 부잣집에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유난히 얽매이기 싫어했는데, 해도 되는 것보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더 많아 유년 시절을 반항과 더불어 나름대로의 고통 속에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입니다. 새 옷에, 새 신발로 잔뜩 멋을 부리고 어머니 손을 잡고 학교로 가던 중, 어머니는 저를 보며 대견해 하셨습니다. 새로 입학하는 딸의 모습이 예쁘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 미경이 이제 학생이네? 학교 가니까 좋아?”
만면에 함박웃음을 띤 어머니가 물어보시는데 차마 내 진심을 말씀드릴 수 없었습니다. 내 마음을 알면 얼마나 비관하실까 싶어, “응, 좋아.” 라고 억지웃음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속으론 ‘내 인생은 끝났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뼛속까지 스물스물 추위가 스며드는 3월초에, 운동장에 좌악 서서 ‘둥근 해가 떴습니다’를 따라했습니다. 마이크로 고래고래 소리 질러 노래 부르던 여선생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워 눈물까지 글썽이며 노래와 율동을 따라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내가 좋고 싫고에 관계없이 하루하루 그런 대로 적응하며 학교엘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아버지께서 1년 여의 투병생활 끝에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넉넉지는 않으나 그런 대로 부족한 것 없이 재미있게 살던 우리 집은 삽시간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든 생활이었지만 다행히 동생을 낳기 전까지 초등교사로 재직했던 어머니께서 다시 복직이 되어 어려우나마 다시 웃음을 찾고 오순도순 살게 되었습니다. 가족 모두 제 자리를 찾아 열심히 생활했지만, 철딱서니 없던 저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제멋대로인 성향이 더욱 강해져서 가족과는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대대로 교육자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 교육자의 길을 걸으셨던 어머니는 무척이나 보수적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집안의 딸들이 혹시라도 무시를 당하지는 않을까, 나쁜 길로 새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시며 여자로서의 몸가짐을 강조하고 우리 네 자매를 철저하게 교육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가 “안돼!” 라고 하면 할수록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고, 집보다는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자매는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조신하고, 여성스럽고, 모범생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눈에 제가 예뻐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네 자매 중 저만 물에 뜬 기름처럼 따로 놀았고,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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