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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 나를 사망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신 하나님

티에리 프랜시스 | 마다가스카르    진리를 찾아 방황하던 날들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 위치한 마다가스카르 섬 출신으로 한 아내의 남편이자 열여섯 살 된 딸의 아버지인 제가 2005년 9월 6일 한국에서 마침내 구원받았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제 종교 생활에는 많은 굴곡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교를 믿는 아버지와 가톨릭 신자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록 두 분 모두 열심히 교회를 다니시진 않았지만, 저는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어릴 때부터 가톨릭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히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종종 신교 교회에도 나가곤 했습니다. 사실 부모님은 자녀들의 신앙과 믿음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하라고 맡기셨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내내 가톨릭 신앙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은 모두 헛되고 쓸모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마도 가장 진지하게 교리문답 수업을 참석한 학생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리문답 수업에서 배운 것을 요약하자면, 예수께서 우리 죄를 씻어 주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도와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죄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 주일마다 교회에 가야 하고 특히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의 교회 행사에 빠지지 않아야 했으며, 신부님에게 일주일 동안 지은 죄를 고백하고 신부님이 암송하라고 지시한 기도문을 마음속으로 암송해야만 했습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죄인인 신부에게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도 있었지만, 그것이 규칙이었기에 따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진짜 잘못한 일은 숨기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제 신앙심은 식어갔고, 교리문답 수업을 받는 동안 몇 가지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종교과목 담당 선생님을 자꾸 귀찮게 하곤 했는데, 제 질문에 대해 선생님은 언제나 똑같이 “그것이 바로 수수께끼란다, 얘야.” 라는 대답만 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1982년 8월부터 1987년 8월까지 ‘북한’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북조선 인민 민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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