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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제37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05년 8월 6일 저녁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 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 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1-31)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 누가복음 16장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성경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생활하는 가운데, 내가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성경이 나라는 인간에게 하고 있는 말, 그 내용과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책을 읽을 때 주권은 항상 책을 읽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힘으로 우리를 비추어 볼 때는 내가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너무 낮추어 생각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너무 높여 생각하는 등 마음대로 평가합니다. 성경 말씀을 영혼의 양식이라고 말하면서도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처럼 수월하게 먹지를 못합니다. 성경 앞에서는 무언가가 꽉 막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를 빗다가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면 탈모증이 아닐까 하여 의사에게 상담하기도 하면서 많은 신경을 씁니다. 그러면 의사들은 신경을 많이 써서 그렇다든지 하는, 증상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성경을 내 몸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생각하는 것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나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 가는 이 인생길은 언젠가 끝나는 때가 옵니다. 그날은 모든 사람에게 옵니다. 우리 중에는 먼저 간 사람도 있고, 자녀를 먼저 보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이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집과 같습니다. 각 사람들의 고귀한 영혼은 몸의 주인이 되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가면서 몸은 서서히 허물어져 갑니다. 그전에 우리의 영혼이 몸의 모든 감각, 시력이나 청력, 근력 등을 통해서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살았느냐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성경은 나를 붙잡는 힘이 있었습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나는 성경이 붙잡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성경은 전 인류를 엄청난 흡인력으로 끌어들이고 붙잡는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시편에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119:89-91)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말씀이 만물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주 만상이 자기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는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풀끝에 맺힌 이슬 같은 인생에 오신 예수님     우리 인생도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시 90:3) 하신 말씀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전 11:5) 고 되어 있고, 시편에는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139:14) 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준비를 아주 세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태어나서 사는 동안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전부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쟁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 교육을 많이 받고,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0) 라고 했습니다. 70년을 살든, 혹 얼마를 더 살든 우리는 결국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주께서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이나 괴로운 일을 당할 때면 이런 찬송가를 많이 불렀을 것입니다.       광야에 찬 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산너머 눈보라 재우쳐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찬송가 290장)       언젠가 우리 영혼은 돌아갑니다.       사망의 바람에 이슬같이 되나 나의 귀한 목숨 영원일세 (합동찬송가 562장)       이 초로 인생 살 동안 내 갈 길 편할지혹 환난 고통 당할지 난 알 수 없도다  (합동찬송가 283장)       인생은 풀끝에 맺힌 이슬 같습니다. 메뚜기 한 마리가 뛰면 언제라도 뚝 떨어지고 마는 이슬 같은 인생인데도, 사람들은 내 인생만큼은 질기다고 착각하며 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은 한 순간의 일입니다. 전혀 질기지 않습니다. 또 우리 자신의 일인데도, 우리는 그때가 언제일지 모릅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은 마지막 대열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신이 젊다고 해서 ‘나는 저 노인보다 더 오래 살 거야’ 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또 ‘나는 병에 걸렸으니 건강한 사람보다 일찍 가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제일 건강한 사람이 제일 약한 사람보다 먼저 가는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세상은 우리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곳이지, 영원히 살 곳은 아닙니다.     이런 인간 세상에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찬송가 404장)       그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는데,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 한 선지자가 한 말이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잠언 30:4)       그 아들이 직접 오셔서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떠나셨는데, 그 말씀이 여느 이야기꾼들의 말과 같은 것이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의 귀가 열려 있기는 하니까 아무 답도 없고 해결점도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다 가셨을까요? 아니면 어떤 철학자들처럼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만 갖게 해서 자꾸 연구하게 하고 가셨을까요?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요한복음 18:37)       이 말씀은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을 들은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해답을 찾지 못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라고 말씀하셨던 그 진리의 본체이신 분을 도외시하는 한, 진리에 대해서는 알 길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 모든 성경 말씀이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에 대해서 증거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자신도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에게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라고 직접 이야기하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모든 말씀의 초점은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한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고 하셨습니다. (요 4:25-26 참조) 예수는 어떤 때는 때가 되지 않았다며 자신에 대해서 숨기셨지만, 어느 시기에 가서는 “내가 그로라” 하며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한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 다니며 생애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서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 중에서 돈을 맡았습니다. 이름은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수학 계산도 빨라서 혼자 속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이 사람의 말을 아무리 들어 보아도 선생으로서 오랫동안 나를 가르치고 동고동락할 사람은 아니구나. 자기 말대로 얼마 있으면 장로들에게 붙잡히고 로마인들에게 팔려서 죽을 것이 뻔하다. 이왕 죽을 것, 그냥 죽는 것보다 가치 있게 죽는 것이 낫지 않겠나. 돈을 받고 팔아야겠다.’     그는 돈에 대한 순수한 가치 척도를 갖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판 돈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선생을 팔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만 죽인 것이 아닙니다. 그가 저지른 이 일로 인해 2천 년 세계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팔아버린 파렴치한 인간이 바로 유대인이었다고 해서 많은 유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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