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국내·외 성경탐구모임 2005년 8월 2일 저녁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세아 14:9)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 말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생각을 해 봅니다. 학교나 집, 혹은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윗사람을 만나 뵈었을 경우, 주변 사람들은 그 어른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해 합니다. 어떤 어른을 만나러 가서 이야기를 듣고 나온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또 형제간에도 ‘혹시 아버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라고 묻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는 동안 서서히 말의 진실성이나 말의 힘을 느끼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어른 말씀 잘 들어라’ 혹은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어머님 말씀 잘 들어라’는 등의 당부의 말을 많이 들으며 컸습니다. 말의 중요성은 어떤 사람의 위치, 지위 혹은 그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성경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생기는 것은, 들음이라는 중요한 통로로부터 비롯된다는 약속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 1:1) 하는 말씀에서 이 ‘말씀’은 과연 어떤 말씀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성경을 읽어 오면서 종종 생각했던 것은, 말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말로 인해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살아있는 표현입니다.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세상을 살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던 분도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 대화를 하지 못하면 글이라도 써서 대화를 합니다. 아니면 수화를 사용해서라도 어떤 표현을 합니다. 서로 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말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릴 적 기억인데, 아침 일찍 눈을 뜨면 아버지가 성경을 낭독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을 외우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2)
이런 말씀을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기 때문에 ‘복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구나. 악에서는 멀어져야겠다.’ 라고 자주 다짐하곤 했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고어체로 되어 있어서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어렵게 느껴졌지만, “복 있는 사람은 ...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는 말씀이 생각나서 성경을 자주 되새기며 읽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읽은 것을 금방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저를 보면서 ‘당신은 성경을 꽤 좋아하는 것 같네요.’ 라며 자기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기분 나쁜 소리를 들으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기억합니다. 하루 종일 그 소리가 생각나는데, 귀와 머리가 그런 쪽으로 발달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성경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 집착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을 건성으로 읽느냐, 정확하게 읽느냐 하는 것. 하나님 말씀을 가장 중요한 어른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토씨 하나까지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세히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비결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성경을 읽으면 이상할 정도로 성경이 제 생각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될 때는 제가 정하고 관심을 두어야 좋아하게 되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이해가 되든지 안되든지 상관없이 성경 말씀에 자꾸 끌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읽어보고, 또 읽다 보니 성경 말씀 안에서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어떤 생명력이 있다. 성경 말씀은 틀림없이 내 일생을 바꾸어 놓고 말 것이다.’ 저는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성경을 좋아하든지, 좋아하지 않든지 읽어 놓으면 내 두뇌나 내 기억력은 분명히 성경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더욱 가까이했습니다. 과거에는 소설책이나 문학 잡지에는 재미를 느끼고 성경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렇게 재미없던 성경이 다른 책을 읽을 때 느꼈던 재미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한 어떤 것으로 나를 끌어가기 시작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산이나 들, 혹은 밀림이나 초원 지대를 가보면 각자의 마음을 끄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저 한번 바라보고 ‘아, 산 높고 좋다.’ 하거나 올라가서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하고 노래나 한번 부르고 내려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겉에서 보이는 산의 모양새보다는 산 속에 숨겨져 있는 바위나 나무, 풀 같은 것과 함께하기 위해서 산 속 깊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 자연 경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차츰 차츰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알아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바빠서 그런지는 몰라도 건성으로 보아 넘깁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 곡을 연주하더라도 악기로 표현하든지, 정 안되면 젓가락을 두들겨 소리를 내서라도 무엇인가 흥겹게 박자를 맞추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냥 소리만 한번 내고 말기도 합니다. 더 낫고 진실한 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런 것과 거리가 멀게 화려함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일생을 사는 동안 귀나 눈, 코와 입, 심지어 피부까지도 고상하고 좋고 가치 있는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찾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돼지가 저에게 알려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저는 돼지가 더러운 시궁창에서 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멧돼지가 흙탕물에서 굴러 진흙을 몸에 뭍히고 몸을 햇빛에 말려 진흙이 굳었을 때 몸을 나무에 대고 문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굳어 있던 진흙이 다 떨어집니다. 멧돼지는 그런 방법으로 자기 몸에 붙은 진드기나 해충을 떼어 내고 있었습니다. 천연의 최고급 머드팩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멧돼지도 나름대로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사는데, 하물며 인간이 그렇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많은 책들을 읽습니다. 무언가 추구하는 것이 있어서 책을 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읽은 책들 속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책을 봅니다. 시험을 치를 지식을 얻기 위해 잠도 줄여 가며 공부합니다. 그것은 노력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속의 평화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어떤 대가를 받기 위해서 그만큼의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찾아가야 할 것은,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먹듯이,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숨이 답답한 사람이 좋은 공기를 마시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의 욕심이 있다면 더 깨끗한 것, 더 나은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왕 물을 마실 바에야 더 맑은 물, 더 안심할 수 있는 물을 찾아 마시듯이, 음식도 이왕 먹을 바에야 농약이 덜 뿌려진 것이나 아예 뿌려지지 않은 것을 찾아 먹듯이, 성경도 그렇게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을 혼잡케 하지 말라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책이나 설교를 접하다 보면 오히려 성경의 진리와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고린도후서 4:2)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이 말씀은 하나님 말씀의 순수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했으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믿어지도록 성경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빛을 비추는 전등을 오랫동안 그대로 두면 전등의 표면에 미세한 먼지들이 붙어 빛의 세기가 약해집니다. 그래서 오래된 등들은 닦아주거나 깨끗하게 해야 그 빛을 제대로 발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멀어질 수 있는 교훈도 성경 말씀과 같이 섞어서 말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어졌지만, 이 세상에는 그것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힘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게 만드는 힘이 서려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성경을 처음 볼 때 ‘어두움’이 발견됩니다. 이 어두움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밤이나 그늘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세력의 권한에 속한 것입니다. 살다 보면 내 정신이나 영혼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일이 자꾸 꼬이는 수도 있고, 어두운 어떤 힘이 나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무당이 있는가 하면, 신들렸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것에 대해서 ‘어두움의 세력이 세상을 잡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엡 6:12 참조)
정상적인 사람도 으슥한 골목이나 굴속같이 으스스한 곳에 데려다 놓으면 속에 무언가 오싹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스물세 살 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에 공동묘지를 걸어가는데, 낮에 걸어갔을 때와는 그 길의 느낌이 달랐습니다. 무언가 나를 확 잡는 것 같고, 내 발자국 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과 섞여 살다 보니까 이런 저런 것들을 다 떨쳐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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