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모여서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교제를 가지지만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다 천사 같지는 않습니다. 살다 보면 육신의 냄새가 그대로 풍겨 나고,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고, 옛 성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갈 2:4 라는 말씀대로 거짓 형제인 것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과연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는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그 사람을 용납하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계기로 다 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지배하면 무언가를 용납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 자체의 성격이라든가 의지, 사람을 대하는 요령 같은 것들은 가다듬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꼭 해야 하는 말이라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하는 것처럼, 이런 것들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좋은 말이라고 해도 무작정 했다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지나치게 참아서 서로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 일이 그렇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함을 좇으라” 하신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거듭난 사람에게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간증도 있다.” 하고 대답하는데, “그러면 당신은 거룩합니까?”라고 물으면 무언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할 것입니다. 스스로 거룩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 것 없겠네” 하는 가사의 찬송가를 부를 때는 만사를 잊어버리고 스스로 거룩해져 있습니다. 자기의 현실과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있는 “거룩한 형제들아” 히 3:1 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해 주셨기에 거룩함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거룩하게 해 주신 분, 곧 하나님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의 행동을 보면 그렇게 거룩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을 잘 용납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의 속에는 우월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경계하기도 하고, 학식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얕보기도 합니다. 사람 속에 그런 것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계기로 육신적인 것이 허물어지면 속의 것들이 밖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전구의 불빛이 밝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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