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늘날 최고라고 여기는 학문도 세월이 지나면 그 내용이 바뀌어 버립니다.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배우는 학문의 변천이 상당히 심했습니다. 고고학이나 인류학을 생각해 보면, 인류의 발상지도 제가 어려서 배운 것과 지금 가르치는 것이 많이 다릅니다. 자꾸 다른 학설이 나오고 먼저 있던 것은 무너집니다. 세상에는 이렇다 할 만한 것들, 학문들, 주장들이 많이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서 말씀에서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멋지게 잘 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생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다 필요 없고 경제만 제대로 알면 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치를 잘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진리입니까? 돈을 벌어서 남들보다 더 화려하게 사는 것이 진리입니까?
아예 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몇 푼의 월급이나마 생활에 조금의 이익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굶지만 않으면 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돈이 없는 사람도 욕심은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의욕이 없으면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모두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서 10:39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 16:26, 막 8:36, 눅 9:25 참조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권력 있고 가장 돈이 많으며 가장 지식수준이 높으면 다 된 것 같습니까? 영혼이 구원되어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은 상태입니다. 자기 영혼이 죽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기 영혼이 버려져 있는지를 모르고 불행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것이 불행인지도 모르는 사람은 구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자기 처지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추위에 떨지 않기 위해 옷을 껴입는 것도 하나의 지혜입니다. 무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상당히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9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사와 비교해 봅시다.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자기 영혼이 은총을 입었다고 노래합니다. 영혼에 평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자랑이 노래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말씀을 우리는 가볍게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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