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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

히브리서를 생각하며 24회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
히브리서 7:1-25
2004. 9. 4. 강연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의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7:1-25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
앞길에 검은 구름 가렸느뇨 
캄캄한 밤에 갈 길 잃었느뇨
미구에 그 풍우 멈추리로다 
낙심 말고 믿음 굳게 잡아라
의심 걱정 주께 맡기고 눈물로 무지개 삼고서
비와 바람 지나기까지 굳게 잡아라 믿음 
이 찬송가 가사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검은 구름”이나 “비와 바람”에는 각 개인의 생활, 집안, 장래 문제나 개인이 겪고 있는 일이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시절을 살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하는, 저주받은 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 찬송가의 가사는 우리 각 개인이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요즘은 참 좋은 시절입니다. 안방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신이 원하는 방송을 보고, 노래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마비되어 어떤 좋은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져 감각이 무디어지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뉴스가 빨리 전해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자신의 생활 터전에서 살인 사건이나 교통사고, 화재 등이 발생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그 일에 상당히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무디어져서 이웃 나라에 몇 명이 죽었다거나 태풍이 불어 몇 명이 휩쓸려 갔다고 해도 별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죽더라도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편리한 것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니 다른 일에 대해 감각이 둔해지고,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성경의 예언서를 읽어도 자극을 받지 못하고 별다른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만주에서 살던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젊은 사람들이 꿩을 잡으러 갔다고 합니다. 꿩은 걸음이 빠르지만, 날개가 둥글고 짧아 날더라도 다른 새들처럼 멀리 날지 못하고 어느 정도 날다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꿩을 잡기 위해서 부지런히 따라가면 꿩은 힘껏 들판을 달려서 도망갑니다. 그러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 같으면 머리를 눈 속에 푹 넣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숨은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와서 꽁지를 잡아당겨 꿩을 잡습니다.
우리는 ‘그 조그마한 꿩 대가리에 무엇이 들었겠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꿩보다 큰 뇌에 기억세포가 140~150억 개씩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마비되어 있으면 오히려 눈 속에 머리만 파묻은 꿩보다 더 불행합니다. 꿩은 잡혀 죽으면 끝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8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영혼이 있고 지능, 감정, 감각과 같은 것들이 그 영혼을 감싸서 보호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 보호막에 구멍이 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 주어져 있습니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라고 했던 사도 바울의 편지 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떠한 시절을 맞고 있는지, 시대를 느끼는 감각은 어떠한지, 이러한 시절에 대해 나는 어떤 책임을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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