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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 교회사 종교 개혁과 그 영향 2

교회사
종교 개혁과 그 영향 2
1. 개신교 교파의 발전 
종교 개혁 이후 형성된 개신교 교파로는 마르틴 루터로 인해 생긴 루터 교회, 장 칼뱅으로 인해 생긴 개혁 교회와 장로 교회, 그리고 헨리 8세로 인해 생긴 영국 국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개혁주의자들을 청교도라고 불렀습니다.
유럽 대륙은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가톨릭 국가와 개신교 국가로 나뉘었습니다. 가톨릭은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와 남부 독일을 중심으로, 개신교는 북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반도, 네덜란드,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교세가 확장되었습니다. 루터는 독일의 비텐베르크에서, 칼뱅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했습니다.
루터가 유럽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니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에서 그의 영향을 받아 독일과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중심으로 루터파가 생겨났습니다. 이때 유럽 전역에서 많은 학생들이 루터가 있던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몰려왔는데, 그중 덴마크에서 온 한스 타우젠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루터에게 성경을 배운 후 덴마크로 돌아가 복음을 전했고, 1530년에 덴마크는 개신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덴마크의 지배 아래에 있던 노르웨이도 1537년에 개신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스웨덴에서는 페트리 형제들이 비텐베르크로 와서 루터의 가르침을 받고 돌아가 복음을 전파했고, 1529년에 개신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칼뱅의 교리는 처음에 스위스를 중심으로 전파되었고, 후에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칼뱅파 교인을 위그노라고 했는데 이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칼뱅의 교리는 네덜란드로도 전파되었으나 네덜란드도 가톨릭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칼뱅의 제자였던 존 녹스가 교리를 전해 장로교가 생겨났습니다.
영국에서는 헨리 8세를 통해 종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1534년 헨리 8세가 수장령을 발표하고 가톨릭교회와 결별하면서 영국 국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영국 국교회는 성공회라고 불리는데 개신교 교파들 가운데 가톨릭 성격이 가장 강한 교파입니다.
당시 영국 국교회 안에는 개혁주의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을 청교도라고 불렀습니다. 청교도 안에는 분리파와 비분리파가 있었고, 분리파는 영국 국교회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갔고, 이후 그중 일부는 영국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2. 가톨릭교회의 변화
1530년부터 이어진 종교 개혁의 바람은 오랫동안 ‘교회’라고 불리던 공동체를 가톨릭과 개신교라는 두 개의 이름으로 나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개신교 세력이 가톨릭에 비해 약했지만, 독일과 북부 유럽, 네덜란드, 영국 등에서 그 영향력이 점차 강해졌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개신교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해 전쟁과 정치를 이용했습니다. 그로 인해 어느 정도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으나, 이미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접한 신자들의 이탈을 막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내부에서도 심하게 부패한 문제는 제거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가톨릭의 움직임과 자정 작용을 반종교 개혁이라고 합니다.
반종교 개혁의 대표적인 합의로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있습니다.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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