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23.10> 라틴 아메리카 기독교 역사 Ⅰ- 신대륙 정복의 배경

라틴 아메리카 기독교 역사 Ⅰ
신대륙 정복의 배경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대부분은 가톨릭 신도의 숫자가 개신교 신도의 숫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가톨릭이 국교로 지정된 나라들도 있습니다.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는데, 이때 자신들이 믿던 가톨릭 신앙을 이곳에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가 라틴 아메리카에 전파된 것은 그보다 훨씬 늦은 1700년대의 일입니다. 당시 모라비아 선교단이 카리브해 서인도 제도의 섬에서 선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개신교인 숫자는 20세기에 들어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가톨릭의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 대다수는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 전파의 경제적 배경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는 1492년입니다. 그 당시 유럽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건으로는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들 수 있습니다. 1453년에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에 함락당하면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입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국가였기에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소아시아 전역은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과 동양을 이어 주던 가장 중요한 무역로인 실크로드가 차단되었습니다.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으로 유입되던 수입품 중 유럽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은 향신료, 특히 후추였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후추를 검은 황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실크로드를 차단하고 높은 통행세를 요구함에 따라 유럽에서는 후추 값이 폭등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했던 인물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으로, 항해 경험이 많은 탐험가였습니다. 그는 1484년에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2세를 찾아가서 대서양을 항해해 동양으로 가는 탐험을 지원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육로가 아닌 바닷길로, 유럽 대륙의 동쪽이 아닌 대서양 쪽으로 돌아서 인도로 가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서쪽으로는 드넓은 바다와 접하고 있고, 육지로는 스페인과 국경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내륙으로 진출하기에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지중해 무역에 집중하고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전쟁 중이었습니다. 스페인도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과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대륙 남쪽을 돌아 동양으로 가는 바다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무역 확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미지의 바다를 탐험하는 것은 현대에 우주를 탐험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먼 곳으로 항해하기 위해서는 좋은 배와 정확한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포르투갈은 이탈리아에서 조선공, 항해 장비 기술자, 지도 제작자, 천문학자들을 불러 모아서 새로운 항해 기술 개발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