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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 교회사 Ⅴ - 종교 개혁과 청교도 운동 Ⅱ

교회사 Ⅴ
종교 개혁과 청교도 운동 Ⅱ
- 영국의 종교 개혁과 18세기 복음 운동
 
영국의 종교 개혁
1) 영국의 종교 개혁
영국에는 2세기경에 이미 기독교인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4세기에는 존 위클리프를 통해 종교 개혁 운동이 시작되었고, 헨리 8세가 통치하던 16세기에는 종교 개혁에 대한 열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헨리 8세는 앤 불린이라는 왕궁 시녀 출신의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로마 교황청에서는 왕비와 이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과 완전히 결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왕을 영국 국가와 교회의 유일한 최고 통치자로 하는 법률인 수장령을 제정했습니다.
수장령이 시행된 후 영국에서는 독자적인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국 성공회(聖公會)입니다. 헨리 8세는 가톨릭 수도원을 폐쇄했고, 수도원의 많은 재산과 토지를 영국 왕에게 귀속시켰습니다. 로마 교황청에 세금을 내던 것도 중지하고, 로마 교황청에서 행사하던 재판권, 성직자 임명권도 모두 거부했습니다.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열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6세는 칼뱅주의 성향의 개신교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친개신교 정책을 폈습니다. 이에 따라 성당 안에 있던 성상이 제거되었고,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로 진행해 오던 미사가 중지되고 영어로 성경을 낭독했습니다. 성찬식 때는 평신도에게도 떡과 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6세가 열다섯 살의 나이로 갑자기 죽자 그의 이복 누이인 메리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1세는 성공회 성직자들과 개신교도를 투옥하고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처형해 ‘피의 메리(Bloody Mary)’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메리 1세 사후에는 앤 불린의 딸인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지정했고,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던 청교도를 탄압했습니다. 이에 청교도인들은 영국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청교도라는 말은 토마스 플로가 1563년에 출간한 <대형 교회사>라는 책에 처음 등장합니다. 영어로는 ‘퓨리탄(puritan)’이라고 하는데, 성공회 내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스스로 일컬은 말이 아니라, 청교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조롱하려고 쓰기 시작한 말입니다. 
엘리자베스의 뒤를 위어 왕위에 오른 제임스 1세 때는 청교도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해져 청교도의 해외 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1608년에는 4백여 명의 청교도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옮겨 갔고, 1620년에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편찬하기도 했던 제임스 1세는 아들 찰스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청교도는 국가와 교회에 악질 전염병과 같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제임스 1세의 아들 찰스 1세 때에는 청교도에 대한 박해가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1642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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