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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히브리서를 생각하며 9회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히브리서 2:1-4
2004. 3. 6. 강연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브리서 2:1-4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히브리서 2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 중에 가장 중점 되는 내용이 있다면 1절과 3절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히브리서 2:1
들은 모든 내용들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브리서 2:3
우리는 성경을 믿는 사람으로서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성경을 읽고, 얼마나 성경을 토대로 하여 살고 있습니까? 잘못하면 성경은 성경이고, 나는 나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그저 종교적인 경전처럼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면 책이 싫어집니다. 골치 아픈 공부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중에도 공부를 즐기면서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해야 하는 일이니 악착같이 할 뿐입니다. 공부가 싫다는 것은 공부 못하는 사람이나 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방학이 되면 모두가 좋아하지 않습니까?
방학이나 공휴일이 되더라도 숙제라든가 시험 걱정에 짓눌려 할 수 없이 책을 읽기도 합니다. 시험이나 학위를 얻기 위해 보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약이 입에 쓰더라도 먹어야 병이 낫듯이, 무식을 타파하고 실력을 쌓아야 하기에 싫어도 책을 보는 것뿐입니다. 책을 읽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도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전 12:12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운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선뜻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은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참 좋아했던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만화책입니다. 하지만 만화책을 보는 것은 상당히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만화책만 보았다 하면 야단이셔서 큰 노트 앞에 만화책을 놓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아시고 간식을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럴 때는 양심이 간지러웠습니다. 그런 것이 마음에 맞지 않아 하루는 친구와 둘이 돈을 모아서 ‘오늘은 실컷 만화책을 보고 오자.’ 하고 만화방으로 갔습니다. 만화책을 잔뜩 쌓아 놓고 앉아서 같이 읽었는데, 나중에는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고, 머리가 아플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라 오면서 생각해 보니 만화라는 것도 사람의 생각에 의해 만들어져 내 생각과 공감이 되기 때문에 끌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그런 만화책이 좋았고, 조금 더 크면서는 이런저런 잡다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정답대로만 해야 하는 교과서는 재미가 없었지만,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가는 책들은 마음을 끌어 주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부를 위한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공부해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생각하던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데 필요한 단조로운 의식주 외에, 다른 정신세계가 이 세계를 잡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니 전에 책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이 그곳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내 눈앞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 책이 나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면 전에 읽었던 명작 소설이 영상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실에 직접 존재하는 사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가 화면을 통해 눈앞에서 번쩍이면 우리는 거기에 휘말려 들어갑니다.
우리는 ‘옛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옛날입니까? 내가 모르는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현대에 와서 복잡하게 대두되어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내가 외면하면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흘러가 버립니다.
그러나 그 옛날 일은 현재 우리에게 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뉴스를 듣기 싫고, 신문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런 과거의 일들은 나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땅 위에 존재하면서 몸 붙여 살고 있는 동안에는 그 일이 비록 과거의 일일지라도 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시인이라면 ‘오려던 봄도 가기 싫은 겨울도 다 덮여 버렸구나, 하얗게.’ 하고 글을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봄들이 눈에 묻혀서 계속 지나갔듯이, 내 세월도, 내 과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봄이 눈에 묻히듯이 계속 지나갔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나은 봄이 있습니다. 인생의 봄은 갔더라도 정말 화려하고 안전한 봄, 영원의 봄이 우리 앞에 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재에 머물러 있는 이 몸이 과거를 모른다 할지라도, 세상은 과거 때문에 들썩거리고 시끄럽습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지금 우리는 좁은 땅덩어리에 살지만 옛날 우리 땅은 굉장히 넓었습니다. 광개토 대왕이 만주 벌판을 누비고 다녔다는 역사를 배웠는데, 이제 와서 중국은 그 역사가 자기네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교과서를 바꾸고 있는데 한국에는 어떤 대책이 있느냐며 뉴스에서 떠들고 난리입니다. 또 일본은 독도가 자기들 것이라고 합니다. 정신세계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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