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어느 날, 멕시코에 있는 한 감옥에 가서 죄수들 앞에서 설교를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고, 그때로부터 10년이 더 지났습니다. 전에 가졌던 ‘과연 누가 다음에 말씀을 전하게 될까?’ 하는 의문은 이제 없지만, 그와 비슷하게 지난 몇 년간 제 마음속에서 저를 괴롭히는 질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후세대에 전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을 움켜쥐고 나갈 젊은 세대의 마음에는 중심을 잡는 힘이 얼마나 강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집중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끈기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창 49:27 하는 베냐민 지파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 있습니다. 그 성격을 닮은 베냐민 지파의 사도 바울은 생의 마지막까지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사역을 놓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통해 그러한 내용들을 알아 가면서 저는 이것이 젊은 세대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일을 시작했다면, 그 일에 손가락 하나라도 담갔다면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채찍질로 훈련받으며 끝까지 어떤 일을 해내는 모습 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내 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 살아 있는 말씀이 내게는 사장된 말씀이 됩니다. 야곱은 밤새 천사와 씨름하면서 복을 주시면 놓겠다고 하며 그를 끝까지 붙잡았고 결국 복을 받았습니다. 창 32:24-29 참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창 15:4 라고 약속해 주셨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대로 태어난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던 일도 있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도 있었고, 사라가 죽은 후에 그두라라는 처를 통해 여러 아들을 얻기도 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일을 이루기 위해 많은 재물을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아들들에게 주어서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계자로 자라났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이 복음은 거저 주어졌으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래 남겨 두시고 또 훗날 후손에게도 그대로 남겨 이어 주시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성경 앞에서 한 번 돌이켜야 합니다. 또 ‘복음이 우리 안에서 수십 년을 전해져 왔으니 언젠가는 이 복음이 변질되거나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는 책임감 없는 생각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생각은 성경의 여러 구절들이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성경은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 59:21 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저절로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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