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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 구약성경에 비추어지는 예수님의 그림자

2006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구약성경에 비추어지는 
예수님의 그림자
2006. 12. 28. 저녁 강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1-4
성경을 바라보는 눈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아, 이 사람은 내가 언제 어디에서 만났던 사람이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기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옆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웃고 있는지 화를 내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또 뒷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을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집니다.
성경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성경을 어떤 방법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가지신 계획과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한지 나에게 비추어지는 모습이 천차만별입니다.
세상에는 성경을 잘 알고 믿는다는 사람,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성경 이야기들 중에 자기와 맞지 않는 말씀이 보이면 금방 실망합니다. 예를 들어 디도서 3장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5절 하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운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답이 내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세상을 살면서 알아 온 모든 도덕적 관념에 비추어 ‘그래도 나는 깨끗하게 살아왔는데.’ 하는 마음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뒤에서 바라보고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바라고 계시는 한 가지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가 똑같이 품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품는다는 것은 가진다, 끌어안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교리에 대입하여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스스로 예수의 마음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 번역 성경들을 보면 이 구절이 ‘이 마음을 너희 마음에 거하도록 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마음을 너희 마음속에 있도록 허락하라.’라는 뜻입니다. ‘있게 하라’라는 말의 표현이 ‘품으라’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누구의 마음입니까? 영어 성경에는 ‘예수 안에 있었던 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말씀에는 ‘예수 안에 있었던 그 마음이 너희 안에 거하도록 하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깨닫고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이들에게 성경이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류를 위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는데, 그 마음을 너희 마음속에 있도록 허락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비추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갖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두고 우리 인류를 향해 기록해 놓으신 성경 말씀을 상고하고 그 속에 파묻혀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고 가시는 말씀의 방향을 따라가면, 우리 마음이 저절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마음이 내 마음속에 품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엄청난 복을 허락하십니다. 그 일이 거듭나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듭나는 경험으로 나타납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생활 속에서 말씀에 다가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육신과의 싸움이 있기 때문에 말씀에서 자꾸 멀어집니다.
그러한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 있는 인류를 향해서 성경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라고 말씀하셨던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실 때, 창조주 하나님으로 계셨을 때,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때 간절히 바라셨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을 그대로 이루시기 위해, 완전한 순종을 이루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예정하신 이유와 인간의 죄로 인해 개입된 율법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 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까지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상고하는 것입니다.
앞서 성경을 읽다 보면 각 성경, 특히 서신서들의 출발점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에베소서는 유대인이며 사도였던 바울이, 아데미 여신을 섬기고 이방 신들을 섬기는 이방 죄인이었던 에베소 사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2:12 라고, 그들이 할례가 없던 약속 밖의 이방인이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1:1 라고 하며, 옛적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말씀해 오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경영하시는 순서와 방향에 따라 진행되다가 히브리서 13장의 “영원한 언약의 피” 20절 라는 예수의 피에서 만나 한 가지 답을 내리게 됩니다.
구약성경은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시기 수천 년 전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서 목적하신 바를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없습니다. 70년, 길면 80년, 조금 더 길면 겨우 90년 안팎을 사는 인생들이 수천 년의 역사를 경영해 오신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그 마음부터 먼저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우리 삶에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들판에 있는 동안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일을 시작하셨을 때 성경에서 세례 요한의 목소리는 점점 줄었습니다. 성경에는 유대인의 역사와 그 후면에 있는 교회의 그림자, 그리고 교회의 비밀이 발표되는 과정, 그 미묘한 관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성경 속에 이러한 것들을 숨겨 놓으셨는지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이 자기 위엄을 자랑하기 위해 잔치를 벌였을 때, 왕후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방백들에게 과시하려고 왕후 와스디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와스디는 왕명을 거역하여 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왕후의 지위를 박탈당했습니다. 그 후 아하수에로는 왕국에서 아리따운 처녀 중 한 사람을 왕후로 세우기로 했고, 에스더라는 이름의 용모가 고운 유대인 처녀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에스더를 키우다시피 했던 사촌 오빠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유대인인 것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에는 하만이라는, 총리 정도 되는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그에게 굽혀 절하지 않았고, 이 일로 인해 하만은 모르드개의 민족 전체를 말살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고 말했고, 왕후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 위치를 드러내지 않았던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따라 때가 되었을 때 왕 앞에 나아갔고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과 하만이 자기 민족을 학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이라는 에스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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