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에는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갔고, 이후에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또다시 흉년이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내용과 함께 로마서 6장과 이사야서 30장 말씀을 살펴보면서, 죄 구덩이에서 허덕이는 인류를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예수께서 이루어 주신 일이 충분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로마서의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6:2 하는 말씀이 이러한 내용들 속에서 더욱 빛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주겠다.” 창 26:2-3 참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예정하셨던 그 엄청난 복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실을 발견한 후에 세상을 살아가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이제는 세상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이 세 인물 중에 이삭의 목소리는 상당히 적게 나타납니다. 이상하게도 이삭은 조금 비밀을 가진 듯한 모습입니다. 창세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이삭을 두고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6장에는 이삭이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신 명령대로 그 땅에 머물렀고, 그로 인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삭은 가나안 땅에 머무르며 우물을 팠습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우물을 팠고 야곱도 우물을 팠지만 이삭이 우물을 파는 이야기 속에는 교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26장 12절부터 보겠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2-15절
그 땅에 유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아가는 이삭에게 눈에 보이는 복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2, 4 하신 말씀처럼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한 번 거듭난 영혼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하신 신약성경의 말씀대로 교제를 형성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을 때 우리는 평안이라는 선물도 받고 또 그 속에서 함께 복음에 대한 사명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해서 우물을 막아 버렸습니다. 우물에서는 무엇이 나옵니까? 물입니다. 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은 70% 이상이 수분으로 되어 있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분 섭취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건조한 지역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은 우물 파는 것을 대대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줍니까?
세상에 속해 살면서도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성경을 통해 말씀이 분명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이 무엇인지를 교제를 통해 나누고 그것을 바깥으로 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전도를 한다.’, ‘복음을 전한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듯이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많은 곳에 ‘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하는 이런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함께 모이고 살아가는 중에, 블레셋 사람들이 흙으로 우물을 막아 버렸듯 세상은 자꾸 나를 끌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창세기 26:17-18
이삭은 그 우물들을 다시 파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한 조상이 물을 얻기 위해 자기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는 행동에 불과하지만,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인내심이 신약 시대의 많은 사도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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