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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신 하나님

2006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신 하나님
2006. 12. 26. 오후 강연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4-5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으로 거듭난 우리 
시편 84편을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1-12절
이 말씀 가운데 “주의 장막”, “주의 제단”, “주의 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여호와의 궁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그려 보고 실제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장소를 보여 주는 것 같은 내용입니다. 구약 시대를 지내 왔고 성경을 기록했던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말씀이 우리 이방인들에게보다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우리는 앞서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약성경 속 이러한 많은 내용들은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또 실제로 우리 속에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현실로 닥쳐올 엄청난 복의 그림자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한 모습으로 구약성경에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을 읽었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21-22, 27-28절 
하는 말씀을 우리가 평상시에 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 습관으로 대하면 옛 사람, 즉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옛날이야기이고, ‘이제 내가 말한다.’ 하셨으니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도 분명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라고 하고서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13:34 참조 ‘새 계명’이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옛 사람에게 말한바” 한 다음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신 이 말씀의 순서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는 ‘옛것’에 대한 내용이고, 하나는 “나는”이라고 하시며 예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느 것이 원래 것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성경 속에는 이러한 문제가 단도직입적인 말이 아니라 이야기로 나타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에서, 이스마엘이 분명히 형이고 이삭은 그 후에 태어난 동생인데도 불구하고 이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삭이 하나님께서 하셨던 약속의 유업을 받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복을 받는 문제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나,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에 그런 내용들이 많습니다. 에스더서에서도 그런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원래 주고자 하셨던 복이 언제 약속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교회는 항상 두 번째에 등장합니다. 순서가 그렇습니다. 구약성경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다음에 신약으로 넘어가서 교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현시대, 다시 말하자면 교회 시대의 역사 속 한 토막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내 마음속에 한 번 떨어진 말씀의 씨앗이 하나님께서 언제 마음속에 품으셨던 계획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보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절
첫 구절에 “태초에”라는 단어가 있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짧은 한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요한복음 10장 34절부터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34-36절
이 내용은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시고, 또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옴으로써 많은 양들을 먹이게 된다고 제자들에게 설명하시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일컬은 것으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돌로 공격하려고 하는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 말씀은 시편 82편에 나타나 있습니다. 6절 참조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참 이상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신이 아닙니다. 자기가 신처럼 느껴진다면 오히려 그것이 큰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그것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날은 각자 다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모두가 변화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하는 찬송가도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마음속에 떨어진 말씀의 씨앗이 언제부터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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