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엄마 몰래 집에서 무얼 가지고 나오다가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겁이 났는지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양심이 더 잘 압니다. 바로 이 양심의 발로에 의해서 사람은 종교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형상도 만들고, 태양을 섬기고, 달을 섬기고, 거대한 바위를 섬기고, 바위로 사람같이 깎아 만들어 섬기고, 별의별 것들을 다 섬깁니다.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아침마다 거울 앞에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자기 얼굴을 닦고, 그리고, 지우고, 계속합니다. 좋아서 웃기도 하고, 웃다가 보면 또 주름 생길까봐 얼굴을 잡고 웃기도 합니다. 그래도 늙어가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조금 있으면 잘 보이던 것도 침침해집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눈에 맞는 안경을 하나 낍니다. 그렇게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애를 쓰고, 그래도 치과에 몇 번 오간 흔적이 생기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갑니다. 늙음은 어떻게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전서 15:19)
만약 우리 인생이 이렇게 살다 마친다면 성경에 말씀하셨듯이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생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우리 인생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이 그러한가 한번 살펴봅시다. 만약 어느 종파에 속해 있든지 예수 믿는 일, 하나님 섬기는 일, 교회 다니는 일, 이 모든 일이 평생 우리 옆에 따르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이 내 영혼과 함께 있지 않아서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지 못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이 성경에 있는 모든 저주, 모든 형벌이 여러분의 기억 속에 없고, 생각 속에 없고, 그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혹 성령이 내 영혼과 함께 있는 것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언젠가 엄청난 두려움에 떨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로마서 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이 차이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8절에는,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혹 여러분 중에 과거에 언젠가 내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그래서 구원을 얻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 말씀을 한 번 더 보십시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여러분 스스로가 진단하시기 바랍니다. 형제자매들과의 교제 가운데 같이 섞여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에 있느냐, 영에 있느냐는 것은 분명히 한번 구분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어디 있느냐? 내 몸 밖에 있느냐, 내 마음 문 밖에 있느냐, 내 속에 있느냐.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수명을 다해 죽기 전에 이 사실이 이루어져 있어야만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