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05.03>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2004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12월 29일 저녁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4-5)
 
 
 
사도 베드로의 부탁
 
 
베드로전서 1장과 2장을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2장,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표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저는 처음에 베드로 전, 후서를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평생 물고기만 잡던 사람이 어떻게 이런 엄청난 글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요? 과연 이것이 사람의 두뇌로 된 것일까요? 사람의 학식이나 학문 실력으로는 이만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19세기 사람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읽는 인터넷에 대한 안내서나 책자를 보여 주면 당대 최고의 학자라 할지라도 그 책들의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19세기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만 해도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컴퓨터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계산기입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컴퓨터의 크기가 커다란 탁자보다 컸습니다만, 점점 축소되어서 지금은 아주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단지 계산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사람의 두뇌에 육박할 수 있을 정도로 자꾸 개발되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3, 40년 전 사람들이 오늘의 인터넷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성경 베드로 전, 후서의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라는 사람은 인품으로 보나 그 사람의 생애로 보나 이만한 문구가 나올 만한 두뇌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어떻든 이 글은 베드로가 쓴 서신입니다. 이것에 대한 답은 베드로 자신이 한 말 속에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베드로후서 1:12-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하는 이 장막은 어떤 천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몸을 장막이라고 표현했고, 이는 자기 영혼이 자기 몸속에 있을 동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썩을 장막 떠날 때에 주의 얼굴 대하리  (찬송가 541장)
 
 
 
어느 성도가 찬송한 대로 우리 육체는 언젠가 썩을 것입니다. 욥은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 19:26) 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베드로후서 1:14)
 
 
 
예수님은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 21:18) 고 하시면서 베드로의 죽음을 예고하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말을 합니다.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후서 1:15-16)
 
 
 
“나의 떠난 후”, 이것은 몸이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 그런 떠남이 아니라 영혼이 몸 밖에 나간 후를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라는 말은, 예수의 능력과 예수께서 언젠가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강림하실 그때의 이야기는 공교롭게 꾸며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함께 만나는 장면을 넋을 잃고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마 17:4) 라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냥 내려가자고 하셨던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때 예수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베드로후서 1:17-20)
 
 
 
21절, 다 같이 읽읍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성경의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아무 예언이나 마구 지어낸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지식이라든가 위치 같은 것들과 전혀 상관없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인간이 가진 문장력이라든가 인간의 솜씨로는 베드로 전, 후서를 기록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 지상에 살다 간 인간들, 또 살고 있는 인간들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베드로전서 1, 2장은 짧은 내용이지만 성경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사람의 영혼을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계획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2천 년 전의 것이지만, 성경 전반에 흐르는 부분들을 전부 살펴서 여기저기 맞추어 보면 이 말을 떠올리게 되어 있고 또한 알게 됩니다. 성경은 전에 기록된 성경과 후에 기록된 성경이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고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두뇌로 연결 짓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시함을 받아 읽어나갈 때 더 빨리 성경이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기록된 성경이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만 읽는 것은 너무 약합니다.
 
 
베드로가 이 글을 쓰는 일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7) 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 16:13),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요 14:12) 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더 큰 일을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신약 성경을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말과 글에 대해서는 신뢰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의심부터 하는 것이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주신 말씀이 성경에 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전, 후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성경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 구절 한 구절의 내용들이 우리에게 가까운 듯합니다. 또 알 듯 말 듯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내용이 보입니다. 우리가 어떤 커다란 망원경을 가지고 먼 곳의 경치를
로그인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볼수 있습니다.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