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떠난 후”, 이것은 몸이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 그런 떠남이 아니라 영혼이 몸 밖에 나간 후를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라는 말은, 예수의 능력과 예수께서 언젠가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강림하실 그때의 이야기는 공교롭게 꾸며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함께 만나는 장면을 넋을 잃고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마 17:4) 라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냥 내려가자고 하셨던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때 예수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베드로후서 1:17-20)
21절, 다 같이 읽읍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성경의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아무 예언이나 마구 지어낸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지식이라든가 위치 같은 것들과 전혀 상관없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인간이 가진 문장력이라든가 인간의 솜씨로는 베드로 전, 후서를 기록할 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 지상에 살다 간 인간들, 또 살고 있는 인간들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베드로전서 1, 2장은 짧은 내용이지만 성경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사람의 영혼을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계획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2천 년 전의 것이지만, 성경 전반에 흐르는 부분들을 전부 살펴서 여기저기 맞추어 보면 이 말을 떠올리게 되어 있고 또한 알게 됩니다. 성경은 전에 기록된 성경과 후에 기록된 성경이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고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두뇌로 연결 짓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시함을 받아 읽어나갈 때 더 빨리 성경이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기록된 성경이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만 읽는 것은 너무 약합니다.
베드로가 이 글을 쓰는 일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7) 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 16:13),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요 14:12) 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더 큰 일을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신약 성경을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말과 글에 대해서는 신뢰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의심부터 하는 것이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주신 말씀이 성경에 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전, 후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성경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 구절 한 구절의 내용들이 우리에게 가까운 듯합니다. 또 알 듯 말 듯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내용이 보입니다. 우리가 어떤 커다란 망원경을 가지고 먼 곳의 경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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