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는 양심이 괴로웠습니다. 성경은 그가 스스로 뉘우쳤다고 했는데,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방법으로든 스스로 뉘우치고 있습니다. 종교에는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물에 들어가면 죄를 씻을 수 있다는 힌두교의 교리 때문에 인도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어느 강에 몰려가 들어갈 준비를 하다가 수십 명이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침례를 받으면 죄를 씻을 수 있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 3:21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침례는 하나의 예표이지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침례를 백 번 받는다 해도 죄는 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성경 교리의 원칙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침례를 받음으로써 죄를 씻는 줄 아는 것이나 수백만 명의 인도 사람들이 죄를 씻기 위해 물에 들어가려고 했던 일이나 똑같습니다. 또 이때 가룟 유다가 스스로 뉘우치고 자기가 정죄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스승을 판 돈을 돌려주며 물러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그 돈을 성전에 던져 넣고 목매어 자살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태복음 27:1-5
이것이 가룟 유다의 죽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 스스로 뉘우친 것은 종교에서 말하는 교리대로라면 회개를 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뉘우치는 자책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종교인들 중에 이 가룟 유다처럼 양심의 고통을 앓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마태복음 27:6-8
가룟 유다는 예수 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성전에 다 던져 넣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 돈을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해 성전고에 넣으면 안 된다고 의논한 후, 그것으로 나그네의 묘지를 샀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내용을 이루는 한 장면입니다. 유대인들은 종을 팔 때 가격이 은 이십에서 삼십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요셉도 그렇게 팔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창 37:28 참조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마태복음 27:9-10
구약성경 스가랴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11:13 참조 예레미야라고 된 것은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때 가룟 유다가 이렇게 던져 버린 돈으로 나그네들의 묘지를 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덕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생각하며 기독교의 지난 2천 년의 세월을 종합해 보았을 때, 참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정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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