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여러 문제들 앞에서 평안하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면 됩니다. 그러면 답답한지 어떤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알아 가면 갈수록 불안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던 시절에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이야기해 놓았는지도 모르고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읽은 내용 속에는, 2천 년 전에 제자 한 사람 잘못 두었다가 그 제자에게 팔려서 잡혀 죽게 된 예수라는 한 사나이에게 죽음이 닥쳐오는 상황에서 예수를 죽이려는 사람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과 현재 사는 인류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면 좋겠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입장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7절부터의 이 내용은 현 시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성경을 안다면 전율을 느낄 만큼 불안한 내용입니다. 단지 2천 년 전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현실 앞에 놓여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그저 세상에 와서 재수 없이 대제사장들에게 재판을 받고 끌려다니다가 죽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사람이겠습니까? 만약 그가 꼭 그렇게 되리라고 선언했던 이야기가 오늘날을 내다보고 있다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큰일입니다. 또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예수보다 더한 사기꾼은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교회는 사기꾼 집단들이 되고 맙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다 속고 있는 것이고, 믿음도 다 파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이 여기 기록된 그대로라면 세계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어려움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예고한 말은 지금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할 때 예수라는 말, 그리스도라는 말은 아주 쉬운 말입니다. 이 내용 속에 유대인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재판하면서, 예수를 조롱하며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스도야!”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당대 무리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하면 출교하기로 작정해 버렸습니다. 요 9:22 참조 당시에 유대교에서 출교당한다는 것은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만큼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겁이 나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할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점쟁이 노릇을 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조롱하며 애먹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압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십자가 목걸이를 달고 다닙니다. 요즘에는 십자가가 액세서리로 어디에든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아무에게나 다 전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 속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라는 말은 예수를 비꼬는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속으로는 인정하더라도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어느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을 때도, 그 소경의 부모는 그 일을 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시인하면 출교를 당하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저에게 물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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