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뜨락에서 동네 아가씨들이 야글야글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 있다가 합창을 하는데 들어보니, 제가 아는 노래였습니다. ‘어, 저 노래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하니까, 옆에 있던 친구가 ‘야, 네가 어젯밤 가르쳐 준 노래야.’ 했습니다. ‘난 노래 안 했는데.’ 했더니,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가 어젯밤 노래 안 한다고 끝까지 버티더니 자면서 큰 소리로 잠꼬대했다. 잠꼬대로 부른 노래를 저 아가씨들이 듣고 갔는데, 오늘 아침에 잠 깨우러 온 모양이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가을만 되면 그 노래가 제 기억 속에 되살아납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 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천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제가 좋아하던 노래인데, 밤에 잠꼬대로 부르다니. 내 기억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 춤추는 때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얼마나 무안했는지 모릅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내가 더듬어서 찾아내는 줄 알았는데, 내가 불러내기도 전에 나왔던 것입니다. 나는 틀림없이 눈을 감고 잠 속에 빠져들었는데, 어떻게 그것이 나왔을까요?
또 내가 상상치도 않은 일을 꿈에서 볼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꾸고 싶은 꿈이 아닌데도 그런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어떤 꿈은 참 이상합니다. ‘이것이 꿈이 아니면 좋겠다, 더 길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에서 깨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재의식에 대한 글도 많이 읽어보았고, 프로이드의 심리학에 관한 글도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써 놓은 글도 보았는데,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읽다 보니 머리만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어떤 힘이 내 속에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사람에게는 그러한 혼의 작용이 있고, 그 안에 영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지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인 갈등이 심했을 때, 저는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저는 제가 살던 지방이 아닌 전혀 다른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또 5×7 서른다섯, 6×7 마흔둘. 자꾸 이렇게 나이를 먹으며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칠 년마다 확실히 무언가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7이라는 숫자를 무시했지만, 그것이 나의 생활에 직접 관계가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목 뒤의 뼈는 일곱 개라고 합니다. 그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발목뼈도 일곱 개라고 합니다.
그러면 7이란 무엇인가? 어릴 때에는 ‘북두칠성 좌우로 도는’ 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나중에 미국에서 듣게 된 말이 ‘럭키 세븐’ 서양 사람들도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몸보다 정신이 앞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이 납니다. 내 생각이 나를 끌어 줄 때에는 정신이 몸보다 앞서기도 합니다. ‘아이고, 오늘 피곤하다. 비도 오고 몸도 나른하니 쉬어버리자.’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옵니다. 받아보니까 반가운 사람입니다. ‘아 그래, 조금만 기다려. 나 잠깐 준비하고 나갈게. 만나자.’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금새 기분이 좋아집니다. 만약 그 전화가 기분 나쁜 전화라면, 기분은 전화를 받기 전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우리의 정신 세계를 붙잡고 있는 생명 자체가 있고, 그 생명 안에 영혼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나이가 들수록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는 말씀도 있고, “집 지키는 자들이 떤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1:9-12:7)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떤다”, 우리 몸은 흙집입니다. 눈꺼풀은 창문입니다. 맷돌질하는 것은 치아입니다. 이가 좋지 않으면 틀니를 해 넣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육체의 기관을 통해 그 속에 있는 영혼에게 하신 말입니다.
저는 발을 사용할 때면 늘 그것이 척추 운동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과거에 척추를 심하게 다쳐서 3년 동안 앉으면 어지러웠고 빈혈 때문에 쓰러지곤 했습니다. 그랬기에 자세가 나빠지려고 하면 바로 교정을 하고 자세를 바르게 했습니다. 지금은 척추가 똑바릅니다. 나쁘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입니다. ‘하나님, 척추가 좋아지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준 내 육체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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