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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 베들레헴 에브라다의 들판에서

-2004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12월 25일 저녁
 
 
몸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는 주변에서 번쩍번쩍하는 빛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무에도 별빛 같은 전구가 설치되어 번쩍번쩍합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온 시내가 번쩍거리기도 합니다. 이런 빛들은 구세주가 나신 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 오랜 세월 흘러왔습니다. 사람들은 또 그것을 전합니다. 그 많은 빛들은 말은 없지만, 무언가 빛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어떤 청년은 ‘그대 눈동자에 반짝이는 빛’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많은 빛보다 더 참신한 빛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 빛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빛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 속에서 무언가 반짝하는 것이 한번씩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 평범한 생각만 가지고, 밝은 전깃불이나 달빛이나 햇빛만 겪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 ‘이거다!’ 할 때가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 보면, 학교 다니면서 공부할 때도 어떤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다가 ‘아, 이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살아가는 동안 한번씩 번쩍 하고 뇌리를 스쳐가는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확실하게 잡지 못했을 뿐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상에서 꽤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왕이 야곱이라는 사람에게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을 때 야곱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세기 47:9)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하면서도 130년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이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집이 있는데, 한쪽 벽에 금이 가고 기둥이 삐걱거리다가 큰 비가 내려서 주춧돌이 쓸려가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집 전체가 무너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이런 저런 계획들을 다 짜놓았는데, 이것이 어느 날부터 서서히 사그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숨이 붙어 있는 한,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몸이 약해지면 약해진 만큼 정신도 똑같이 약해지기 쉽습니다만, 내 몸은 약해지더라도 정신은 나를 끌어 일으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성경에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잠 18:14)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병든 육체보다 병든 정신이 더 큰 병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비록 약하고 쓰러져가고 기울어져가더라도, 내 생각이 나를 끌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42)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라는 분을 자기 집에 초대했습니다. 이 여인은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바빴나 봅니다. 그릇도 씻고 요리도 하느라고 바쁜데, 얌체 같은 동생은 예수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불러서 일을 시켰을 텐데 높은 분 앞에 앉아 있으니 불러 올 수는 없고, 눈총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내 동생을 시켜서 나를 돕게 하옵소서’ 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은 평범해 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살고 있고, 또 살다가 간 모든 기독교인들 전체가 바라보는 주님의 소리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지, 부지런함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17) 하신 말씀이 있는데, 마리아는 그것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지런한 마르다는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인들 중에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부지런하게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쭉정이처럼 속에 찬 것은 없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린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 3:12, 눅 3:17 참조) 이런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이왕에 이 세상에 왔으니 무언가 하나는 채워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 말씀에 “씨는 하나님의 말씀” (눅 8:11) 이라고 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보면 표현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좋은 땅에, 이런 비유가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억 속에는 어떤 것이 심겨 있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봅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몸’이 사람의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는 ‘몸’은 잠깐입니다. 바울 사도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 속에 비취는 빛
 
 
사람의 뇌 속에는 약 150억 개의 기억세포들이 있습니다. 컴퓨터로 말하자면 중요한 칩과도 같은 것입니다. 기억세포들이 없다면 소리도 들을 수 없는데, 그것들은 전해질과 포도당, 산소 속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숨을 쉴 때 공기의 21%를 차지하는 산소를 폐 속에 받아들입니다. 피 속으로 들어간 산소는 적혈구에 흡수되고, 적혈구는 이 산소를 뇌에 전달합니다. 사람은 며칠 동안의 굶주림은 견딜 수 있어도, 뇌에 산소가 전달되지 않으면 몇 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산소가 뇌 속에 퍼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뇌 속에 있는 많은 기억세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분과 포도당, 전해질이 꼭 알맞은 농도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만약 몸 속의 수분의 농도가 달라지면 사람은 죽게 됩니다. 뇌수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뼈와 살이 있습니다. 눈 주변에도 뼈가 있는데, 매우 얇은 근육으로 덮여 있습니다. 사람이 음식을 씹을때, 눈 옆에 손가락을 대 보면 이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근육은 사람의 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머리가 편하냐, 편하지 않느냐는 이 근육의 활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음식을 많이 씹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단한 것을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즘 음식은 단단한 것을 가루로 만들고 우유 등을 섞어서 잇몸만으로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졌습니다. 채소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사람들은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 5:12)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젖을 먹고 죽을 먹는 시절이 지나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영구치라는 것이 주어졌습니다. 영구치는 그 근육의 발달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이제 사람의 몸을 봅시다. 이 ‘몸’만이 사람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의 몸 안에는 ‘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생각하고 상상하고 무엇을 지어내고 창작하는 힘이 속에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의 가치가 있습니다. 동물은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집이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듯 대기권 밖에 인공위성을 올린다든지, 자신보다 더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는 것을 만들어낸다든지 하지는 못합니다. 이런 힘은 동물에게는 없고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영원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몸(body)과 혼(soul)과 영(spirit)이 있습니다. 그 영을 지배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영이 따로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성령(Holy Spirit)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힘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빛의 원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빛의 원천, 모든 빛의 최상, 말하자면 ‘참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 사진을 찍을 때, 엑스레이 기계로 찍어 놓으면 아마 평생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언젠가는 죽어 뼈만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엑스레이가 무엇입니까? 빛입니다. 빛이 사람의 몸속을 들여다보고 뼈를 찍습니다.
 
 
우리 영혼도 빛에 의해서 조절됩니다. 그래서 “내가 늘 바라던 참빛을 찾음도” (찬송가 208장) 하고 찬송을 하기도 합니다. 그 노래가 왜 나옵니까? 자기 영혼 속에 참빛이 한번 비췬 이 사실은 거짓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사람 속에 있는 영혼은 참된 빛과 연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몸 안에 있는 영은 그 빛에 연결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꾸 자신을 동물 취급하거나 낮추어서 그 빛을 거절합니다. 인생은 상승하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로마서 1장에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3절) 하는 말씀대로 그것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반면, 마음에 참빛을 받아들인 사람은 이런 찬송을 합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찬송가 40장)
 
 
 
어느 성도가 썼는지 모르지만, 정말 잘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이 찬송을 할 때 입만이 아니고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간이 나면 찬송가 책에서 빛에 대한 노래들을 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자기 영혼에 찾아온 축복을 얼마나 많이 노래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힌 보배로다  (찬송가 469장)
 
 
세상의 어떤 노래가 이만큼이 되겠습니까? 다른 노래로는 안 됩니다. 사람의 귀는 두개골의 형태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달팽이관이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사람은 균형을 잃고 흔들리거나 기어가게 됩니다. 사람이 걸어가기 위해서는 두 쪽의 달팽이관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청신경이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빛을 감지하는 시신경도 균형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 생활 속의 빛
 
 
오늘날 최고로 발달되어 있는 과학으로 빛을 논하고, 빛을 가지고 우주를 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를 통해서 앞날을 내다보는 현대 과학의 발전된 모습이나, 공상과학영화 등에 등장하는 미래 과학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이 과학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작은 곤충을 잡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곤충의 의사소통 방식, 감지 능력 등을 조사해 이런 기능들을 우주선에 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모두 빛으로 조절됩니다. 이 빛들을 통해 참빛이 인간에게 더 가깝게 다가서려고 하는데, 인간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주 아파서 괴로울 때 빛을 연구하고 이용해서 좋아진 경험이 있습니다. 말라기서에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4:2)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치료하는 광선’이라는 것은 태양 광선 중에 눈에 보이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햇빛 중에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빛도 있습니다. 그 빛들 중의 원적외선은 치료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빛은 사람에게뿐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그것보다 더 나은 빛이 무엇입니까? 먼저 참빛의 근원이 있고, 그 다음에 그 참빛의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사람들은 자기가 어디서 무엇을 실패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이렇게 생각합시다. 의사는 사람의 몸을 의술로 다루어 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의술은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MRI라는 것도 빛이 없으면 안됩니다. 빛으로 하는 것입니다. 빛으로 시작한 X-ray는 아주 옛날 것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학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6.25전쟁 때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거는데, 전화선이 모자라서 걸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났을 때도 전화선이 모자라서 야단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통신망이 발달되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통신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광섬유라는 것이 나오고, 인공위성이 우주에 뜸으로써 이런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휴대폰도 빛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빛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입니다.
 
 
빛이 없다면 사람에게 시신경이 필요합니까? 시력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빛이 없으면 다 필요없습니다. 안경 장사는 다 망할 것입니다. 현미경도 소용없습니다. 인공위성도 다 끌어내려야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영원한 곳을 향한 아름답고 행복한 빛
 
 
가을에 열매가 빨갛게 보이는 것은 익었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인해 과일들이 익어갑니다. 사람은 나뭇잎처럼 쭈그러지고 늙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생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1:9)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주는 것은, 참빛을 발견하고 소망을 든든히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덧없이 왔다가 덧없이 갑니다.
 
 
사람들은 햇빛이 강한 여름이면 자외선을 막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선크림을 바릅니다. 두텁게 화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늙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주름이 생기고 얼굴이 자꾸 변해갑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람의 삶이 그것뿐이라면 원통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는 빛 말고, 짐승들이나 식물들, 벌레들이 좋아하는 그 빛이 아닌, 사람의 영혼 깊숙이 연결되려는 참빛으로, 이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이 끝날 때 영원한 곳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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