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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91회
마태복음 22:41-46
2003. 2. 15. 강연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마태복음 22:41-46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바리새인들이 모였다고 했는데, 이 모임은 평범한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가장 정통이며 모세의 법대로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에 이들이 모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들은 확실하게 어떤 사실 때문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하는 것도 그저 개인들이 모이고 싶어 모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예수님 당시 이러한 사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뜻 없이 된 모임은 하나도 없습니다.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서 왔거나, 친구를 데려왔거나, 혼자 왔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이 모여서 예수께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과정이 더해지고 깊어질수록 예수의 죽음은 더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이 있고, 또 다른 질문과 대답이 있고 하다 바리새인들은 끝내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한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죽으셨고, 기독교는 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희망이 없는 것같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일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 것이었고, 그로 인해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여서 말씀을 듣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 뜻 없이, 아무 이유 없이 세월이 흐르는 것 같지만, 세월은 결코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때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함께 모여 교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외형적으로나 참으로나 어떻든 모인다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가 집회를 갖는다는 그 자체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이 모여서 예수에게 질문을 했을 때 예수와 상당히 깊은 관계가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만약 이 모임이 없었다면 마태복음 22장 41절부터 46절까지의 성경 기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이것을 기록했습니다. 마가와 누가도 이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막 12:35-37, 눅 20:41-44 참조 사도들이 이 내용을 기록한 이유는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우리가 이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두고 현재 이 세상의 일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세상의 소식과 관련해서 누가 중대 발표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한쪽에는 항상 전쟁의 위협이 있습니다. 섬뜩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고 아무 일도 없는 것같이 웃고 떠들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듯 총을 쏘고 그 총을 피해 사람들이 도망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이 전쟁인 줄 착각합니다.
 만약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모든 것이 결판날 것입니다. 이제는 6·25전쟁 때나 쓰던 콩 튀기듯 소리 나는 기관총 같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불이 한 번 번쩍이면 동네 하나가 없어져 버립니다. 가공할 만한 무서운 무기들이 서로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비행기가 뜬 것을 지구 반대편에서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또 전에는 큰 군함에 대포를 싣고 다니면서 쏘았지만, 이제는 위성을 통해서 스위치 하나면 바로 폭탄을 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옛날 무기와는 다른 엄청난 화력으로 파괴력이 증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보통 일입니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될 일이 있습니다. 성경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높은 권세 있는 자들을 위해서 경건하고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딤전 2:1-2 참조 복음의 길이 막힐까 봐 그렇습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찬송가 542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제각기 살길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그때는 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좀도둑이나 강도들이 돈 몇 푼에 사람을 쉽게 죽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동차나 금품을 노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무법자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아수라장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 일이 현실이 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며 찬송하는 생활이 유지되겠습니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마 6:13 하는 말씀이 사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형제자매라 부르던 사람들이 배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2 하는 말씀도 어느 부분에서는 실현될 것입니다. 
 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보실지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할 지혜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짐승처럼 그 안에서 허우적댈 뿐입니다. 그래서 확실히 믿는 신앙인들이라면 서로에게 어떻게 하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류 역사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슬쩍슬쩍 하신 이야기들 속에는 뼈 있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 말들은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천 년 전의 예언들이 이행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2장 44절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하신 말씀은 이때로부터 천 년 전에 기록된 시편의 말씀을 들어 하신 말씀입니다. 시 110:1 참조 
 이 말은 문법상 맞지 않습니다. “주께서 내 주께”, 자기가 자기에게 한 말처럼 되었지 않습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주께서”,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천 년 전에 기록된 이 시편의 말씀이 이행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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