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있기 전에 먼저는 한 사두개인이 예수께 까다로운 질문을 했습니다. 일곱 형제가 있는데 맏형이 장가들었다가 후사가 없이 죽어 동생이 형의 아내에게 장가들었고, 그 동생도 죽어 그다음 동생이 장가들었는데 그도 죽고, 그렇게 일곱째까지 다 죽었다면 부활 때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능력도, 말씀도 오해하였다며 부활 때는 지금과 같은 자연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장가가고 시집가지만 그때는 완전한 몸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질문한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기 때문에 멈춰 섰습니다. 마 22:23-33 참조
혹시 이것으로 인해서 바리새인들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의 답을 들었지만 무언가 막힐 때, 곁에 있는 사람이 질문한 사람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사람이라면 그것을 즐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께 질문을 던졌다가 예상 밖의 답이 나오자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은 마음속으로 상당히 기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것 참 고소하다.’라든지 ‘당할 것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 역시 예수에 대한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모여서 중대한 의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마태복음 22:34-35
모인 바리새인들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려고 예수께 질문을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사람이 서기관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마태복음 22:36
모든 율법 중에 무엇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냐고 질문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태복음 22:37-38
우리나라 군인들은 “충성!” 하고 경례를 합니다. 오늘날같이 민주주의가 보편화되고 모든 사람의 평등을 주장하는 시대에는 ‘충성’이라는 말이 조국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습니다만, 예전에는 ‘충성’이라고 하면 왕을 대하는 신하의 자세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이 과거 충신들의 자세였습니다. 신하로서 충실하게 임금을 떠받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에서 요구되는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율법사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마음과 정성, 자기 목숨까지도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자세와 종교적인 열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다 작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사랑의 방법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작정하는 마음 자세는 오로지 충성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충성하는 것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뜻을 다하여” 했다고 하는 것도 사랑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사람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자들은 ‘아가페 사랑’과 ‘에로스 사랑’을 구분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이겠습니까?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러나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는 분명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없는데 어떻게 인간의 사랑으로 이것이 통과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분명히 이것이 율법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만 사랑하라 하신 이 문제 앞에, 오로지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이것을 지켜 왔고 이 명령을 이행해 왔습니다. 때로는 열심히 하기도, 때로는 타락하고 실패하기도 했지만 이 일은 거듭되어 왔습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9-40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니, 얼마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