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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 너희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2002년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12월 30일 저녁, 31일 오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제가 옛날에 인도에 살던 선다 싱((S. Sundar Singh, 1889-1929)이라는 한 성자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가 볼 일이 있어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는데, 산을 오르는 도중에 길에 쓰러져 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선다 싱은 동행하던 사람에게 ‘우리가 가는 길이니까, 이 사람을 메고 올라갑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행인은 ‘아이고, 혼자 걷기도 힘든데, 어떻게 이 무거운 사람을 데리고 갑니까.’ 라고 질색을 했습니다. ‘둘이서 이 한 사람을 부축해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했더니, ‘당신이나 그렇게 하시오.’ 라고 말하고는 먼저 휙 가버렸습니다. 책임감이 생긴 선다 싱은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싶지만 혼자서는 힘이 부쳐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을 이대로 놔두면 죽겠구나.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사람을 데리고 저 고개를 넘어가야겠다.’ 는 결심을 하고, 등에 업기도 하고 끌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눈 쌓인 높은 고개를 올라갔습니다. 결국 고개 꼭대기에 도착했는데, 가파른 곳을 지나면서 먼저 가버린 동행인을 발견했습니다.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가버린 그는 동상에 걸려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선다 싱과 그에게 업힌 사람은 왜 죽지 않았을까요. 축 늘어져서 무거운 사람을 힘겹게 업고 왔는데 어째서 괜찮았던 것일까요? 사람을 업고 언덕을 오르는 동안 힘이 드니까 몸에 열이 나서 땀이 났고, 등에 업힌 사람은 선다 싱의 몸의 열기와 땀에 몸이 녹아서 죽음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둘 다 죽음을 면했습니다. 결국 그 두 사람은 살기 위해서 혼자 갔다가 오히려 죽은 사람을 언덕 위에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자기 혼자만 잘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서로를 돌아보면서 약하고 힘든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 낫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성경에도 그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야고보서 2:15-16)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찬송가 속에도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찬송가 499장)
 
 
 
우리는 생애에 없던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구출해 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기독교인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써 놓은 찬송가를 보면 그러한 사람의 본능과는 다른 내용들이 있습니다.
 
 
 
슬픈 맘 세상이 못 위로할 때거기서 안위와 복 얻도다  (합동찬송가 422장)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든지, 자기 자신의 의욕적인 어떤 힘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의존하고 기댈 만한 대상을 알게 되는 일은 세상에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알아간다면, 이 세상에서의 생애가 길든지 짧든지, 배고플 때 음식을 먹듯이, 또 추울 때 따뜻한 바람을 맞이하는 봄이 오면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외로움이라든가 허무함, 이 모든 것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이야기,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 영화, 웃기는 코미디언의 말들에서 살짝 살짝, 아편 같은 위안과 즐거움을 찾고 그 속에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어떤 글을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척 외롭고 우울하고 쓸쓸한데,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없기에 어딘가를 찾아갔습니다. 그가 간 곳은 유명하다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 병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괴로움을 그 의사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 의사는 ‘당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며칠 후면 이 도시에 유명한 코미디언이 오는데, 말재주가 좋고 사람을 잘 웃긴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당신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 라고 처방했습니다. ‘그래요, 그 코미디언의 이름이 뭡니까?’ 라고 물으니, 의사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설명을 듣고 보니까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이 의사를 찾아 온 환자가 그 코미디언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를 치료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평안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돈이나 명예나 어떤 지위 등 세상의 것으로는 평안을 얻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20) 한 말씀대로, 성령께서 사람의 영혼 속에 죄사함 받은 사실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속죄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게 되었을 때는 그것을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합니다. 그것은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성경 속에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던 죄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성경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압니다. 그 어떤 다른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그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죄인 괴수까지 그 구원을 얻어 매일 보호 받고성신을 모시고 주를 따라 가니 사랑의 불길이 내 맘에 일도다주께서 보내신 사랑의 불길이 사랑의 불길이 내 맘에 일도다 (합동찬송가 403장)
 
 
 
어느 나라에 태어났든지 예수님의 사랑을 확실히 자기 안에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이 찬송가 가사가 자기 마음에 그대로 믿어집니다. 이 세상에 한 가지 이상한 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과 기쁨은 사람의 열심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어느 교파에 소속되어 교회에 다니면서 평생 동안 자신을 바치고 사는 것은 인간의 열심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것은 말씀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도는 어떤 생명을 이식받는 것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짧은 생애를 부여받고 태어나 한 가정의 일원이 됩니다. 커서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 자기의 생애를 살아갑니다. 그 사람의 전 생애가 무엇으로 장식되어 세상을 누비다 가든지, 그 마음 깊숙이에는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마음은 갈등이나 이 세상 것으로 채워지고, 진짜로 채워져야 할 참된 것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슨 값을 치른 것도 아니고, 어떤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좋은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어느 좋은 장소에서 세월을 보낸 것도 아닌데, 마음이 평안해지는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어느 곳에 있든지 성경이 있는 곳이라면 성경이 요구하는 조건으로 인해 자신이 성경 앞에 적나라하게 놓였을 때, 자기 영혼의 부르짖음과 갈등을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었을 때, 그 마음에 이루어지는 일은 별다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안 되는 한 가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단체가 구성된다든지 국가가 형성될 때 나타나는 지배자나, 세계를 지배하려하는 사람이나, 나라를 이끌어 가는 위인이나, 어떤 시대의 위인들 중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어떤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즉 아주 작은 나라의 사람이든,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든, 경제 대국의 사람이든, 군사력이 강한 나라의 사람이든, 세계적인 예술 도시의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난 사실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구원받은 사람들은 간증이 모두 같습니다. 자신이 예수를 참으로 믿게 된 이유나 원인을 설명하다 보면, 믿게 된 결정적인 부분은 모든 민족을 초월해서 다 같습니다. 그것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원수로 지내는 두 집안이 나옵니다. 이 두 집안 사람들은 도무지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사이가 나쁩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헤어져서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살다가 성경을 알고 구원받게 되었다고 합시다. 후에 어느 장소에서 마주쳐서 기억을 더듬어가며 대화하다가, 한 사람이 ‘내가 젊었을 때 당신과 원수였는데, 살다 보니 나도 갈등을 좀 느꼈습니다.’ 하면, 다른 사람이 눈이 반짝반짝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허, 나랑 비슷하네.’ 이런 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서서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우연한 기회에 여행하다가 누군가 어떤 책자를 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해 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었소. 그 책을 얻어서 집에 와서 읽다가 내 마음이 트이고 열리는 경험을 했소. 이렇게 감사한 사실이 이 세상에 있는가 싶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기뻐한 후로, 젊을 적 원수였던 당신을 한번 꼭 만나고 싶었소.’ 라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적이 있는지라, 그 시간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화해의 악수를 나눕니다. 마치 원수의 땅에서 자기편을 만난 것처럼 반가울 것입니다.
 
 
 
이 땅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 평안이 어디 있나 그대 살아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시라  (합동찬송가 439장)
 
 
하나님 나라는 허황된 곳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기술이 발달해서, 시체를 태울 때 만들어지는 탄소 덩어리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유가족에게 기념으로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1980년대 초에 미국에서 어떤 허울 좋은 프로젝트가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기라는 상상은 하지도 않겠지만 사기성이 짙었습니다. 의학 범죄에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이런 것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병에 걸려서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을 경우 그 사람이 죽기 직전에 피를 다 빼 버리고 냉동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의학이 발달해서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을 때 냉동상태의 몸을 해동시켜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지. 그런 희망을 안고 냉동된 사람은 사실상 숨이 떨어지기 전에 죽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 17:11) 고 했는데, 몸에서 이미 피를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과연 소생할지는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잘못된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입장에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3백 년 후에 내가 다시 살아나서 그 시대를 산다 할지라도, 내가 이전에 사귀었던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늙은이가 살아나서 누구와 다시 사귀겠습니까? 귀신이 왔다고 다 달아날 것입니다. 사람들의 상상력이 기발하고 톡톡 튀는 각종 아이디어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미국의 한 유명한 부자는 천국을 다녀왔다며 글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신문을 보다가 참 희한하다 싶어서 스크랩을 해 두었는데, 그 내용을 같이 보겠습니다.
 
 
첫 우주 관광객 티토 귀환 : ‘천국 다녀왔습니다.’
 
 
6일간 2000만 달러(약 250억원)의 비용으로 역사상 최초의 우주관광객이 된 미국의 억만장자 데니스 티토(Dennis Tito·60)가 카자흐스탄의 초원지대로 6일 오전 5시35분(현지시각) 무사히 귀환했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우주관광 시대가 열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티토와 러시아 우주인 2명을 태운 우주수송선 소유즈 TM-31호는 이날 오전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출발, 약 3시간 만에 카자흐스탄에 착륙했다. 지구에 돌아온 티토는 땀에 흠뻑 젖은 채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며,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고 CNN은 전했다. 티토는 우주여행은 천국에 간 듯한 기분이었다며 멋진 비행, 대단한 착륙이었다고 도착 소감을 밝혔다. 우주에서 출발 직전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티토는 지난 달 2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의 러시아 우주기지를 출발한 소유즈 수송선이 지구궤도에 들어서자 “하라쇼(러시아어로 ‘좋다’는 뜻)”를 연발하며 기뻐했다. 그는 30일 ISS에 도착한 뒤 잠시 메스꺼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우주에서 주로 오페라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으며, 창밖으로 지구를 바라보는 등 한가로이 지냈으며 우주비행사들의 식사운반을 돕기도 했다.
 
 
티토의 무사 귀환으로 ‘우주관광 시대’는 한층 앞당겨질 전망이다. 극도의 재정난에 허덕이는 러시아가 이번 성공을 계기로 본격적인 우주관광 돈벌이에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독일의 DPA통신은 지난 2일 “티토의 우주관광을 주선했던 미국의 스페이스 어드벤처사가 오는 10월 발사 예정된 우주수송선 소유즈호에 2명의 우주관광객을 탑승시킬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관광비용은 역시 수천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AP는 보도했다.
 
 
2001년 5월 7일자 조선일보
 
 
이 사람은 ‘천국에 다녀왔다’고 표현했는데, 만약 제가 그렇게까지 좋았다면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간 곳은 우주선 안일 뿐입니다. 우주선을 타고 그 안에만 있었지, 우주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우주선이라는 캡슐 안에만 있다가 바깥의 별들이나 보고 지구를 멀리서 바라보고, 그 안에서 할 일이 없어서 비행사들의 음식을 나르는 것을 돕다가 왔을 뿐입니다. 우주선 안에서 이 지구에 있는 오페라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낸 것을 보면, 그 쪽에서는 들을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엄청난 액수의 돈을 들인 기분에 들떠 있는 것뿐입니다. 한 사람의 감정이 요구하는 약간의 즐거움이라는 조건, 그것 하나 때문에 기아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엄청난 돈을 들여서 혼자 잠깐 눈요기하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런 여행을 천국에 다녀왔다는 인사로 끝낸다면 천국의 주인은 아마 나중에 그에게 벌을 주실지도 모릅니다. 그 부자가 저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일단 가게 된다면 되돌아오기 싫은 곳입니다. 그 사람은 천국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입니다. 누가 그에게 그렇게 가르쳤다면, 헛된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세계 만민이 의의 길 ...길과 진리요 참 생명 네 창검을 부수고 ...주 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찬송가 265장)
 
 
 
이 찬송가를 보면, 천국의 기초는 이 땅위에 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은 절대로 저 위의 구름 위에 있다든지, 별들 사이에 왔다갔다 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티토라는 사람은 그냥 먼 공중에 올라갔다 왔습니다. 지구 근처에 있다가 되돌아 온 것뿐이지, 지구에서 화성으로 넘어갔다든지 금성으로 넘어갔다든지 한 것도 아닙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소련의 유리 가가린입니다. 가가린은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서 “하늘에 올라가도 신은 없더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조그만 개미가 소의 등에 타면 털이 많기 때문에 웬 기둥이 이렇게 많나 할 것입니다. 한참 헤집고 다니면서 실컷 놀고, 쇠뿔 위에도 가보고, 내려가서 소 콧구멍 앞에서 왔다갔다 해보기도 하고, 위로 올라가서 소 눈앞에 갔는데 소가 눈을 껌벅껌벅 하니까 거기에 치여 죽을 것 같아서 피합니다. 또 귀 옆으로 가서 귓구멍 속으로 들어갔다가, ‘여기는 구멍은 뚫렸는데 왜 축축하게 젖었나’ 하고 빠져 죽을까봐 다시 기어 나옵니다. 또 목을 타고 내려와서 소 발에 내려오니까 좀 미끈한 발톱이 있어서 떨어질까봐 다시 기어올라갑니다. 다시 기어올라가서 꼬리를 타고 가는데, 냄새가 좀 나더라 싶어 뒤돌아 내려갑니다. 땅에 내려와서 하는 말이 ‘개미들아, 내가 소등을 타보니까 소가 없더라. 소는 못 봤다.’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소가 보이지 않습니다. 소의 여기저기를 헤매기만 했을 뿐입니다. 사람이 우주에 갔다 왔다고 하는 것은 지구 밖에서 약간 맴돌기만 한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 사람들은 우물 안 개구리이고, 수박 겉핥는 식으로만 맛본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조그마한 우물을 팠는데, 개구리가 뛰어다니다가 그곳에 들어가 알을 낳았습니다. 그 알에서 올챙이가 태어나고 개구리로 성장해서 또 대를 이어 알을 낳고 삽니다. 한 똑똑한 개구리가 자기가 사는 우물 안에 같이 사는 미꾸라지나 송사리 새끼들을 보고 ‘내가 여기 왕이다’ 하고 뻐기면서 그들을 가르칩니다. ‘우리 세계는 이렇게 넓다. 돌로 쌓인 저 절벽 위로 보이는 하늘을 한 번 봐라. 낮이면 해가 지나가고 밤이면 달이 보이고, 반짝이는 별도 있다. 봄이 오면 꽃잎도 날아오고, 여름 되면 곤충들이 이 샘에 날아와 죽어서 우리의 먹이가 되고, 가을이면 푸른 나뭇잎도 붉게 되어 떨어지고, 겨울이면 눈이 온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아는 상식은 그 우물 속에 살면서 느끼는 것, 그 우물 안에서의 지배권을 갖고 아는 것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우물 안에 이상한 두레박 하나가 내려왔습니다. 개구리는 이것이 웬 거냐 하며 뛰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보니, 두레박을 끌어올린 것은 눈알이 장 종지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개구리는 너무 놀라서 두레박에서 풀쩍 뛰어내려서 그를 쳐다봅니다. 그도 자신과 닮았습니다. 뒤에서 보니까 앞발이 있고, 뒷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또 빨래한다고 쭈그려 앉아 있는 모양이 개구리 자신과 똑같아 보였습니다. 개구리는 새 세상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뿐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알면 무엇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현 시대에 와서는 미래 지향적인 글들까지도 상당히 메마르고 삭막합니다. 우주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고, 그러한 시대를 바라보는 글들을 읽노라면, 그곳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이 기계적인 새로운 문명의 세계가 펼쳐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소설도 영화도, 모두 기계화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지는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한번 잃었던 낙원인 에덴을 더 확대해서 펼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밀턴이 쓴 <실락원>이나 <복락원>에 나오는 낙원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은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이 추구했던 모든 것을 다 합쳐도 근접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힘으로 만들어진 땅에 사는 인간은 감히 하나님의 창조력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책을 읽을 때에 다음 페이지를 열기 전에는 그 내용을 모르듯이,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1) 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펼쳐놓은 광경을 잠깐 엿볼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의 삶은 아직 개봉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인간 역사 안의 일들의 진행과 그것으로 인한 결과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 역사 안에 머물러 있는 인간의 두뇌는 한계에 와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그래서 저는 옛날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의 기억 세포가 140억 내지 150억 개라는데, 그 기억 세포의 몇 퍼센트를 채우고 떠날까. 그것이 아주 큰 의문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물음표 ‘?’를 표시하는 이 모양은 어디에서 생겼을까요. 해골을 떠올려봅시다. 해골의 옆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물음표 모양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해골뿐 아니라, 소리를 듣는 귀도 답을 얻으려는 듯 물음표 모양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직접 만져 보십시오. 그 모양을 잘 보십시오. 그것이 사람입니다. 그 머릿속에는 150억 개의 기억 세포가 있습니다.
 
 
이 알량한 인생의 뇌 속의 기억 세포 속에, 정보를 전달해 주고 알려주는 기관들이 머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습니다. 시력을 갖고 있는 눈, 맛을 느끼는 입, 좋은 소식 듣기를 원하는 귀, 이런 것들을 통해서 감각을 느끼고, 모기에 쏘이면 ‘앗! 따가워.’ 하고 반응합니다. 또 어디서 라일락 향기가 콧속으로 삭 들어오면 느끼는 후각은 어떻습니까? 이 모든 것을 느끼는 힘이 뇌 속에 있습니다. 그 150억 개의 기억 세포 속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분 나쁠 때 ‘제기랄’ 이라고 말하고, ‘Jesus christ!’라고 지껄이고, 놀랬을 때 ‘Oh, my god!’ 라고 내뱉는 그 많은 말들은 다 몰라도 좋습니다. 오직 한 분의 이름만 정확하게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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