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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89회
마태복음 22:23-33
2003. 1. 25. 강연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 두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마태복음 22:23-33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제가 성경을 모를 때 ‘부활’이라고 하면 명작 소설만 생각했지, 부활이라는 그 말 자체는 참 생소했습니다. 다시 산다는 뜻인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알지 못했다면 분명히 부활이 없다고 했던 사두개인들의 편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신신학(新神學)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신학자라고 모두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 사두개인들 중에는 현실주의적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부활이라는 것을 아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부활은 예수께서 이 인간 역사에 직접 이루신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도 땅에 떨어진 씨가 다시 올라와서 그 형체를 이루지 않느냐고 설명하면서, 씨가 땅에 떨어지면 거기서 다시 싹이 나는 자연계의 원리로 부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고전 15장 참조 예수께서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가 맺힌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 12:24 참조 
 세상에는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죽은 후에 대해 알 게 뭐냐.’ 하는 사람도 있고,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막이 내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몸 어느 한 곳 다치지 않고 머리카락 한 올 빠지지 않은 채 외형이 온전하게 있어도 죽음은 옵니다. 사고가 나서 신체가 훼손되었거나 중병을 앓다 숨을 거두었다면 죽은 것을 바로 인정할 텐데, 보기에 멀쩡한 사람이 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멀쩡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다 심장이 멎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몸이라는 외형을 입고 살던 본인이 그 몸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렇게 본인이 몸 밖에 나간 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형태는 그대로 있지만 그 사람을 말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던 모든 원동력이 사라진 것, 그것이 죽음입니다.
 또 그 힘이 사라진 것 같아 보여도 죽음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입니다. 식물인간은 의식이 없고 몸의 기능이 멈추었어도 스스로 숨은 쉽니다. 현대 의학은 식물인간을 살아 있는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어느 한 부분이 없어져 그 숨마저 끝났을 때 죽었다고 표현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말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도 있고, 아픔도 슬픔도 다 아는 인간의 생명 자체가 몸을 떠났을 때, 그것을 죽음이라고, 사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우리 자신이 죽으면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 내가 죽은 후에도 세상은 그대로 계속될 것이며 내가 하던 일들도 다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결국 나만 내 몸을 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영원을 위해 영이 잠깐 몸을 비운 것뿐이고, 언젠가 그 영이 몸과 다시 합쳐지는 날이 온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삶은 영원에 대한 준비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몸이 썩어 없어지는데 어떻게 영과 몸이 합쳐지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1년 전에 ‘나’라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내가 생기기 바로 직전의 어떤 결합으로 인해 내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게 결합한 세포는 모체인 어머니가 먹는 음식에 의해서 엄청난 숫자로 불어납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70살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평생 먹는 양을 따지면, 황소보다 훨씬 더 큰 코끼리 열여섯 마리 정도의 분량이라고 합니다. 읽었던 책 내용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사람은 평균적으로 1년 동안 500kg 정도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먹은 것이 세포를 바꾸어 나가고 성장시킵니다. 세포가 그 많은 음식을 먹어 없앤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이 오면 나를 먹여 준 땅으로 돌아가 사라집니다. 
 이 지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살아갔는데도 지구의 무게는 일정합니다. 한 컵의 물에 비눗물을 풀어서 빨대로 후 불면 거품이 일어났다가 거품이 꺼지면 다 가라앉아 원래대로 돌아가듯이, 우리는 세상에서 몸만 부풀어서 살아가다가 보이지 않는 영혼이 몸 밖으로 나가면 몸은 보이지 않는 형태, 원소로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언젠가 그 몸이 다시 불러 일으켜진다고 했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는 ‘다시 태어나거든 더 행복한 존재로 태어나기를 바란다.’라든가 전생에서 잘못하면 후생에 동물이나 곤충으로 태어난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생에게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부활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부활에 대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9
두 심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부활을 믿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세상에 태어났던 모든 사람,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죽은 입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7 고 하셨는데, 아담이 범죄를 했고 그렇게 그가 죄인이 된 이후에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죽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면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과 관계가 없으면 생명과 관계없이 부활하게 됩니다. 그것이 죽은 자의 부활, 곧 심판의 부활입니다.
 유대인의 역사에는 이 부활이라는 문제가 상당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다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단 12:13 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죽으면 조용히 잠들어 쉬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는 날에 살아나서 하나님의 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습니다.
 부활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모르는 사람,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생명의 부활과 상관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부활에 대해 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살면서 엄청난 빚을 지고 있습니다. 공기도 공짜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짜로 얻습니다. 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언제 그것을 받겠다고 계약하고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두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데, 공짜로 얻은 것을 어떻게 누리며 어떻게 다스렸느냐 하는 것의 결과가 나중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의 사두개인들은 아예 부활이 없다고 함으로써 죽음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책임과 의무를 갖지 않은 채 마음 편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정의가 그대로 인류에게 내려질 때, 거기에 저촉되는 사람들은 모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악한 자의 부활,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되리라는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부활에 대해 모르고 살았다 하더라도 부활 때는 모두에게 다 적용됩니다. 소경은 눈을 가리지 않아도 앞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손으로 눈을 가리고 걷는데 그 길 끝에 절벽이 있다면 절벽에서 떨어질 것입니다. 절벽에서 헛디디면 소경이든 아니든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같이 부활에 대해 알았든 몰랐든 부활의 날에는 모든 것이 결판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다시 살아온 사람을 보았던가?’ 하고 의문을 가지며 부활에 대한 미련을 갖듯이, 세상을 살다가 죽은 사람도 못다 산 미련을 가지고 세상을 떠납니다. 보내는 사람도 아쉬운 마음으로 보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이 시간의 제한을 받는 육체 안에 머물러 있다가 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영원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먼저 영원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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