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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 이스라엘을 통해 내게 주어진 말씀

2006 유럽지역 성경탐구모임
2006. 10. 28. 오후 강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4-5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내 개인의 운명 또는 내 개인이 살아가는 길을 별개의 문제로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심지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설명하고 예수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단지 한 나라의 역사로만, 예수가 태어나기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역사라고만 보고 거기에서 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잘 모를 때에는 성경의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다 보면 그 많은 이야기들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 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성경 말씀이 각자의 마음속에 이루어져 인생이 바뀐 경험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개인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 받은 ‘구원’이라는 것이 한번씩 흔들리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 말씀으로 마음에 변화를 받은 후 성경의 다른 말씀들을 접하고는 ‘큰일 났다. 내가 구원받았는데, 무언가 또 해야 되나.’ 하며 자신의 믿음을 흔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해가 하늘에 떠 있는 중에도 짙은 구름이 잠깐 스쳐 가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을 흔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딤후 2:15 라는 전제를 달아 놓았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많은 인물들이 나타나는데 그것들을 옳게 분변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눅 8:8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귀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어느 날 의학 책을 보면서 귀의 구조에 대해서 살펴본 적이 있는데, 참 특이했습니다.
 우리는 각 개인이 성경책을 소유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누가 책을 갖다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갖다주니 예수께서 그 책을 펴서 읽으셨다고 되어 있는데 눅 4:16-17 참조, 지금 우리도 이 책을 읽습니다.
 또 로마서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17 는 말씀도 있습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면, 성경을 읽다가 구원받은 사람들은 다 엉터리겠습니까? 성경을 읽어도 확실히 거듭난 사람은 거듭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대체 무슨 이유에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에서의 ‘귀’가 그냥 우리 몸에 있는 귀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이 귀를 잘라 내면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접할 기회가 영영 없어져 버릴까요? 귀도 없어지고 눈도 빼 버리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하지만 손으로 짚어 가며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귀’는 도대체 무엇인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가복음 8:4-15
 8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예수께서 왜 듣는 것에 대해 계속 말씀하셨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 그리고 구약을 거쳐 신약으로 넘어오는 이 시대에는 지금처럼 개인이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모아 놓고 모세오경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왕하 23:2 참조 선지자들이나 왕들이 읽어 주는 성경 내용을 듣는 것은 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귀를 통해서 소리를 듣습니다. 이 소리들이 귀를 통해서 내 뇌에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은 아주 특이합니다. 저쪽에서 발생된 소리가 내 청신경에 다다르고, 내 뇌에서 그것을 인지하기까지는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소리가 공기를 타고 옵니다. 공기를 타고 귓속으로 들어온 소리는 그 안에 있는 고막을 살짝 흔듭니다. 고막 안쪽에는 가느다란 뼈가 연결되어 있는데 공기를 타고 온 소리는 이 뼈를 흔듭니다. 기체를 타고 온 소리가 고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세반고리관과 달팽이관, 유스타키오관이 있습니다. 뼈를 타고 온 소리는 뇌까지 전달되기 전에 달팽이관 안에 있는 림프액을 지납니다. 그 안쪽은 액체로 차 있습니다. 그것을 파도치듯이 흔들면 거기서 소리가 뇌로 전달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주신 청각 기관이 우연히 이렇게 만들어졌겠습니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정확합니다. 공기를 타고, 뼈를 타고, 그다음 파도치듯 액체를 통해 소리가 전달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이 세상에 그렇게 존재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롬 1:20 참조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 중에는 우리 귀도 있습니다.
 가을이면 단풍이 들어 나뭇잎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눈이 오고, 봄이 되면 죽은 것 같던 나무에서 새 잎이 돋는 자연의 생명력을 보고 우리는 ‘아, 저것이 저절로 되는 것일까? 창조주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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