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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86회
마태복음 21:33-46
2002. 11. 30. 강연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마태복음 21:33-46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이 마태복음 21장 내용은 우리가 늘 접하는 내용 같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마태복음을 공부해 오면서 공통된 문제점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1장의 이 내용에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누구와의 대화이고 또 이것이 과연 누구를 향한 말씀인가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으레 성경 내용이 자신과 직접 관계가 된다고 덮어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은 예수님과 직접 관계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말씀들을 ‘나’에 대한 말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경을 보면 착각 속에 빠져들어 성경이 내게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만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을 가장 가까이하고 많이 외우고 또 가장 성경대로 살려고 했던 당시 사람들은 성경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직접 세상에 오셨을 때 그를 저주하고 괴롭히고 끝내 그분을 죽이는 일에 가담해 버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성경을 많이 아는 그들에게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예수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15:5, “나는 선한 목자라” 10: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14 하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예수에 대한 내용이 참 많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이 내용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인 자기 자신을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드러내어서 ‘그가 어떻게 취급받고 있다. 장차 어떻게 될 것이다.’ 하고 설명하셨습니다. 
 집주인이 많은 종들을 농부에게 보내어 소출을 받아 오라고 했는데 농부들은 종들을 괴롭히고 죽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집주인이 내 아들은 공경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 아들도 죽여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아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는 말씀을 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24장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44절 하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이 직접 오셔서 성경을 가장 많이 읽고 있던 사람들과 논쟁을 시작하셨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하시고 나서 마 21:28-32 참조 또다시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이 마태복음 21장 33절부터의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을까 생각하여 성경을 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 글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글에 예언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경 전체 흐름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푸대접했다는 내용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다음 날도, 다음 달도, 다음 해도, 시간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가기는 다 갑니다. 종교를 가진 신앙인이든 아니든, 모두가 왔다 간다는 말을 합니다. 좀 더 생각 있는 사람들은 왜 왔는지, 왜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예수는 자신에 대해 “인자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마 26:24 참조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대로 오신 분이 기록된 대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냥 왔다가 갑니다. 세상 학문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에 대해 진리를 논하는 것과 인생을 살다가 끝마치면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의문들을 다 막아 버립니다. 학문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인생의 의문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도록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사 47:10 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가까이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영생이 주어진다고 말하는 종교도 있고, 그런 종교에 대해서 논하는 학문들도 많지만 생명에 대해서 신중하게 다루는 학문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배웁니다. 하지만 어떤 위대한 사람이 인생의 직접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에 대해서 논하면 그것을 꼬집어서 형편없는 것으로 돌려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작은 풀 한 포기라도 생명을 지니고 있어서 봄, 여름, 가을이 지날 때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그렇게 만들 수 없습니다. 생명은 자연 속에서만 자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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