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 기록된 내용과 같이 예수께서 시장하셨다고 했습니다. ‘베다니’라는 말에는 ‘가난한 집, 고난의 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가난한 동네에 가셨으니 아마 아침도 얻어 드시지 못하고 나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예수께서 배가 고픈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잎만 있고 아직 열매도 맺히지 않은 멀쩡한 무화과나무를 죽이셨습니다. 이 일을 두고 ‘예수님은 참 참을성도 없구나. 자신이 배고프다고 나무를 죽여 버리는 것은 자연을 보호하지 않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그저 예수님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겠습니까? 예수께서 시장하셨던 것과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었던 것에는 무슨 관련이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숨은 뜻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인간의 조상 아담은 무엇을 먹음으로써 일을 저질렀습니다. 배가 고팠던 것도 아닌데 욕심을 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던 선악과를 먹은 것은 시장기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먹고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 손바닥처럼 생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창 3장 참조
이것을 보면 무화과나무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식물이 어느 나라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는 석류라는 식물은 한국에 들어온 지 700년 정도 되었는데, 고려 시대에 페르시아 쪽에서 가져와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무화과나무도 그 역사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이 나무는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근처에도 많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해 기록된 성경의 내용들을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조상은 범죄한 후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잡아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다른 옷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대신하여 짐승이 사람들 때문에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셨습니다. 이 중대한 사건에 무화과나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그 일 이후에도 종종 무화과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4장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여 주셨는데, 한 광주리에는 먹을 수 있는 좋은 무화과가 있고 다른 광주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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