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순
카자흐스탄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지 2년 여의 세월이 흘렀다. 카자흐스탄에 대한 내 기억의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37년의 충격적인 역사이다. 그해 2,800여 명의 고려인들이 학살당했고, 나머지 고려인들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추방당해 카자흐 땅에 버려졌을 때, 추위와 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들에게 카자흐 인들이 빵을 싸들고 찾아왔었다는 글을 읽고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제 그 혹한의 땅에 ‘생명의 떡’을 내려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 땅으로 ‘생명의 떡’을 전하러 갔던 이들의 발걸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11월 2일, 6시간 50분의 비행 후,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도착했을 때, 현지 시각은 밤 9시 45분. 알마티의 형제자매들은 대가 굵고 긴 분홍 장미꽃 한 송이씩을 우리의 가슴에 안기며 꽃보다 환한 얼굴로 우리를 환영했다. 카자흐스탄 복음 전도의 불을 당겼던 문명래 자매님은 내 어깨를 얼싸안았다. 지난 여름 한국 성경탐구모임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몇몇 자매님들과, 알마티에서 처음으로 구원받으신 정상진 선생님도 나와 계셨다. 그들 가운데, 독일에서 하루 먼저 도착했다는 김원희 자매와 스테판 형제의 얼굴도 보였다.
일행을 실은 버스는 낯선 어둠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공항 바깥은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고, 가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낡고 키 낮은 건물들을 수없이 지나친 후 도착한 곳은 침침한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흰색의 2층 건물, 알마티 모임집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작은 거실이 꽉 들어찼다. 한국에서 출발한 일행은 모두 12명. 이곳 방문이 세 번째인 권 사모님을 비롯하여, 제주도에서 온 형제자매들 다섯 명과 그외 한국과 미국에서 온 형제자매들이었다. 모임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형제자매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우리는 따뜻한 밥, 얼큰한 육개장에 김치까지 훌륭한 한국식 식사를 대접받았다. 식사 후에는 사탕이 든 접시와 차가 함께 나왔는데, 그렇게 먹는 것이 카자흐 사람들의 관습이라고 했다.
현재 알마티 모임집은 지창원, 허소돌, 윤대성 형제님과 문명래 자매님이 관리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에 약 90명에서 100명의 형제자매들이 모임을 가지는데, 찬송과 기초적인 성경 공부를 하고 로마서 강해 비디오테이프를 본다. 새로 온 사람들에게는 ‘성경은 사실이다’ 비디오테이프를 먼저 보여준다. 지하에 홀이 있으나 한데 모이기에는 너무 비좁아서 지하 홀에서의 예배를 1층에서도 볼 수 있게끔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고, 더 넓은 장소를 구입하는 것이 현재 알마티 모임이 당면해 있는 문제이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알마티 변두리에 위치한 호텔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달게 잤다.
11월 3일
아침은 투명했다. 커튼을 걷고 창을 여니 비온 뒤끝의 상쾌한 공기가 흠뻑 들어왔다. 창 밖에는 키 큰 자작나무의 단풍 든 잎사귀들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만년설을 인 천산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곳, 해발 820미터의 고지대인 알마티에서 세 번째 집회가 열리는 이곳 카르갈린스키 호텔은 간혹 병자들이 휴식을 취하러 오는 곳이라고 했다. 호텔 2층의 큰 홀 벽면에는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말씀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어제부터 시작된 이번 전도집회의 주제 말씀이다.
오후 1시 반경, 집회장 내부가 재정비되었다. 플래카드를 재배치하고, 러시아어 성경과 찬송가를 책상들 위에 배열하고, 홀 안의 전기시설을 점검하는 일들이 진행되었다. 설교 시간이 가까워오자, 홀 안을 메우기 시작한 청중의 수는 약 200명이 되었다. 대다수가 연세가 많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무늬가 있는 스웨터 차림에 털모자를 쓰거나, 조끼 등을 입었다. 청중 속에 드문드문 자리한 정장 차림의 나이 드신 남자 어른들과 소수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모슬렘들도 눈에 띄었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붉은 갈색 머리를 한, 알피아 자매의 어머니와 길고 검은 곱슬머리를 한 어머니의 친구는 이슬람교도라고 했다.
오후 3시 경에 단정한 차림을 한 강사와 통역자가 강단에 섰다. 윤대성 형제님의 한국어 설교를 김옥려 자매님이 러시아어로 통역하기 시작했는데, 매우 속도가 빠른 통역이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비디오카메라 촬영은 알마티 모임의 젊은 청년, 빠샤 형제가 맡아 하고 있었다.
현재 알마티 모임에는 가끔씩 나오는 분들도 있고, 집회 때만 나오고 집회가 끝난 후에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도 꽤 된다. 형성된 지 이제 2년이 된 알마티 모임은 막 걸음마를 하면서 자라나는 아이의 상태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번 집회는 이미 모임에 나오고 있는 분들의 믿음의 뿌리를 다지고, 교회 안에서 굳게 서게 하려는 의미가 컸다. 형제자매들은 ‘성경은 사실이다’ 비디오테이프를 여러 차례 보았으므로, 전도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했다. ‘성경은 사실이다’ 비디오테이프는 러시아어 번역을 수정하여 다시 더빙을 하고 있는 중인데,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태이다. 매주 일요일 예배시간에 듣는 로마서 강해 번역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까, 조금 늦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약 두 시간의 강연이 끝날 때까지 모두 조용히 경청했다. 이 세상 종교는 선하게 살라고 말하고 자기의 선과 공로를 주장하지만, 성경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는 내용이 들려왔다. 영혼의 거듭남이야말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후 5시 반부터는 저녁 식사 시간이다. 집회에 참석한 손님들이 먼저 식당을 메우고 식사를 하는 동안, 한국에서 온 일행들은 권 사모님과 산책을 하며 한 바퀴를 돌아 호텔 앞으로 되돌아왔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렇게 심한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알마티에서 많이 자라는 장미는 계절이 지나 줄기 밑동이 잘려 있었고 검은 토양은 옥토처럼 보였다. 산책 중에 문명래 자매님과 나눈 대화는 내게 알마티 모임을 잠깐 들여다 볼 수 있는 어떤 열쇠를 쥐어주는 듯했다.
“교회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곳 알마티에 머물면서 우리 형제자매들이 지체가 되어 몸이 이루어지는 깊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신과 개성들이 있어 티격태격하는 일들이 있지만, 우리가 한 몸으로서 주님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창원, 허소돌, 윤대성 세 분의 전도인들이 오시면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것 같습니다. 보통은 구원받은 후 개인의 성화를 위한 신앙생활의 길을 가기 쉬운데, 우리는 개인 성화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가운데에는 몸이 이루어지는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형제자매들이 없으면 그 명령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2년 전, 알마티 모임이 시작될 때에도 이곳에 살면서 제 속의 모든 악이 표출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 한국에 귀국했다가 다시 알마티에 와서 이곳 형제자매들과 살면서 저는 달라졌습니다. 이제 저는 제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인도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임 안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기에 ‘교회’라는 몸과 교제가 형성되고 성장해 가고, 새 계명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 문명래
문 자매님은 70대의 나이에 오랜 지병을 가지고 계셨지만, 고지대인 이곳에 와서 오히려 힘이 펄펄 난다고 하셨다. 이곳 알마티는 자매님께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형제자매들 틈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예전보다 더욱 활동량이 많아진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계신 듯했다.
7시 30분. 저녁 집회에서는 청중의 숫자가 낮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는데, 젊은이들의 숫자는 오히려 조금 더 늘어나 있었다. 듬성듬성 앉은 청중의 수는 약 60명이었다. 저녁 식사 후 대부분이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집으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곳은 밤이 빨리 왔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도 희미했고 교통수단도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찍 귀가해 휴식을 취하고 싶은 듯했다. 이를 알고 지창원 형제님은 설교 전과 후에 있은 광고 시간마다, 성경 말씀을 꼭 들으라는 권고를 반복했다.
“여러분들, 여기 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힘이 있을 것입니다. 사탄의 방해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지 못하면 이런 기회를 다시 얻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듣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에 갑니다. 부디 이 말씀을 끝까지 듣고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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