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1:23 이라고 했습니다.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경에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이 말씀이 살아서 내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써 놓은 소설 같은 글들은 한두 번 읽으면 그다음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의 소설이라면 처음 읽었을 때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두세 번 정도 읽으면 ‘아,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그 의미를 새로 깨닫게 되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상대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알아 가면서 상대와 점점 더 친해지듯이, 성경 말씀도 가까이하면 할수록 성경이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더 깊이 느끼게 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보고 즐기는 많은 것들은 우리의 육체를 즐겁게 하고, 문학 작품이나 우리가 공부하는 학문 같은 것들은 우리의 감정이나 사상을 건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나의 육체와 사상, 이 모든 것을 넘어서 내 속에 있는 양심을 건드립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이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는 욕심이 자꾸 생기고 그것을 파고들게 됩니다. 그렇게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같은 구절을 읽었다 할지라도 내가 성경을 얼마나 알아 가고 있는지, 내 마음 상태는 어떠한지에 따라서 성경이 내게 주는 답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저는 다른 성경 내용들을 알아 갈 때마다 창세기 1장 내용에 더 깊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창세기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의 방대한 성경 내용에는 알아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전도서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며 해 아래서 살고 있는 인생 자체가 헛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1:2-3 참조 반면에 신약성경 로마서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1:20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서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철학책으로만 여기게 됩니다. 전도서라는 책은 무언가 헛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러니 네 마음대로 살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찾으라는 것인지 분명히 구별해 알아야 합니다.
전도서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과 끝이 있는 이 세상은 바로 해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항상 빛을 비추어 주고 있는 태양은 실제 빛으로 계신 하나님의 그림자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해 아래서의 우리 삶은 실제 것을 따라하고 있는 그림자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도서 6장 12절을 보겠습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헛된 인생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림자는 빛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빛이 비췰 때 내가 손을 움직이면 손의 그림자도 따라서 움직입니다. 실제 것이 분명히 있어야 그것을 닮은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길어 보았자 80년, 90년 하는 우리의 짧은 인생이 무언가의 그림자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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