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태복음 19:16-22)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이 내용은 마태복음 19장 13절부터 15절까지의 내용과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뿐만 아니라 19장 1절부터의 내용과도 이어집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다른 문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 같은데도, 이 내용은 마가, 누가복음에도 똑같이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노인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이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에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며 이야기가 약간씩 다른 것에 대해서 ‘무언가 숨기기 위해서, 진짜를 숨기기 위해서 이렇게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소작인이 밭을 갈다가 무언가 걸려 들추어 보니 보화 단지가 있었습니다. 땅 속에 보화 단지가 있으니 가슴이 두근두근했을 것입니다. 그는 ‘잘 되었다.’ 하고는 자기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이제 그 밭에 묻힌 보화도 그 사람의 것이 되었습니다. ‘밭 주인이 이 많은 보물을 묻어 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나에게 밭을 맡겼을까? 아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지금 밭 주인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밭을 사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 비유에 관한 내용 중에 나오는 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이 사람이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후 밭에 그대로 숨겨 두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 13:44 참조) 그런데 보물이 감추인 장소가 왜 하필이면 밭입니까? 또 누가, 왜 그 보화를 묻어 놓았겠습니까?
그런데 마태복음 19장의 이 내용 속에도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어떤 중요하고도 비밀스러운 내용이 흐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고전 2:8) 라고 했습니다. 보통 관원이라 하면 계급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정도를 생각하는데, 국가가 정한 법률이나 규칙에 의한 시험에 합격해야 관원이 됩니다. 일반인을 뛰어넘어 국가가 지정하는 힘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이 말씀에 등장하는 관원은 다른 관원이 아니라 유대인 지도자들로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구약 시대의 긴 역사를 통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왕들을 통해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내용들이 흘러오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헤롯 왕가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지만, 그 나라에는 전해져 오는 선지자들의 예언이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은 성경학자들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 맹목적으로 휩쓸려 가는 관원들과는 달랐습니다.
현 시대의 관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의 폭군이나 침략자, 통치자들이 정권을 휘어잡는 방법이 시간이 흐르며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발달되어 그 모습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총칼의 모습이 펜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사람들을 설득해 많은 표를 얻어서 정권을 잡고 그런 것으로 자기 위치를 유지합니다. 그것이 현재 많은 나라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의 유대인 관원들의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로마가 통치하던 시절, 물론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로마인이 정식으로 세워 놓은 관원이라 하더라도 세리들은 유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라를 배신하고 민족을 배신했다고 하여 창기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대인 관원들은 로마가 세워 놓은 관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 윗대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온 전통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살아갔을 뿐 로마에 수긍하는 사람들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라는 인물이 나타났을 때 그가 정말 메시야, 즉 그리스도인지 알고 싶어 정탐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계속 갈팡질팡했던 것이 당시 관원들의 태도이며 심리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요 10:24) 라고도 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이들은 그리스도를 바랐습니다.
이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어느 날 예루살렘이 갑자기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서는 대뜸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하고 물은 것입니다. (마 2:1-2 참조) 당시 유대인들은 그 민족 역사 속에 전해져 온 대로, 성경에 있는 대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기다려 왔습니다. 하지만 오실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고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나타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에돔 족속인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역사와 전통을 잘 알고 있었고, 모세오경을 비롯한 선지자들의 글에 대해서도 알았기 때문에 심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내가 왕인데 그까짓 그리스도가 온 것이 어떻다고? 내 군병이 얼마인데.’ 하는 식으로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일에 대해 참으로 알고 싶었기에 서기관들을 불러서 정확하게 물었습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서기관들은 7백여 년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에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그리스도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니 헤롯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때 이 질문을 했던 왕과 그것을 찾아낸 관원들은, 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각 나라들의 대통령이나 왕들, 그리고 그들을 시위하는 관리들과는 다릅니다. 유대인은 세계 민족사에서 볼 때 다른 민족은 상상치도 못할 만큼 그들끼리 똘똘 뭉친 민족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8) 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 내용 속에는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절부터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어느 가정의 이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본래는 이혼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이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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