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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복음서를 읽으면서 73회
마태복음 18:21-38
2002. 8. 17. 강연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21–35)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 내용은 유대인 아닌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처와 자식들을 다 팔아서 빚을 갚으라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내용이고, 지금 시대의 법에는 통하지도 않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기에, 우리는 이 말씀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태복음 18:21)
“그때”라는 말에는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때”는 어떤 때입니까? 앞에서는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라고 하셨고,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는 순서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마 18:15-18 참조)
사람의 책임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늘에서만 매이고 풀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해야 될 책임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땅에서 두 사람이 합심해서 무엇인가를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게 하시리라”는 말이,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구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뜻이겠습니까? 만약 어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내 것은 무엇이든 네가 쓸 수 있다. 다 주겠다.’고 하며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는데, 잠시 후에 아이가 화장실에서 면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그 면도칼을 달라고 하면, 아버지가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까? 칼은 어린아이에게 위험한 도구이기 때문에 절대로 주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게 하시리라” 하신 말씀은 잡동사니 같은 아무것이나 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내용 속에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그 사람의 죄와 관계된 것을 풀어 준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들 속의 잡다한 것, ‘내가 무엇을 구했더니 하나님이 들어주셨더라.’ 하는 미신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떤 사람이 ‘이번에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더니 다른 아이들은 다 시험에 떨어졌는데 우리 아이는 합격했더라.’고 굉장히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옆에서 하나님도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 
‘내 아들은 되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었는데 시험에 붙었더라.’ 한다면, 시간 보내 가며 애써서 하나님 앞에 부탁한 사람보다 그 사람이 더 낫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엿을 사다가 벽에 붙여 놓고 빌었더니 합격했더라.’ 하고, 또는 ‘나는 어느 돌로 만든 상 앞에서 기도를 했더니 합격되었더라.’ 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합격되었다는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합격한 것이 불행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 합격해서 학교를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하거나 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나을 뻔했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기도하면 다 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신문에서, 배를 타고 항해하던 선원이 풍랑에 휩쓸려서 바다에 빠졌는데 무언가 하나 붙잡고 보니 커다란 거북 등이었고, 해변에 도착한 거북 덕에 무사히 살았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고향에 있는 어머니는 ‘하아, 내 기도 덕택이다. 냉수 한 그릇 떠 놓고 용왕님께 매일 기도했더니 들어주셨다.’ 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교회에 다니고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그만한 기도의 응답을 얻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거북은 용왕이 보낸 것이 아닙니다. 코로 숨을 쉬는 거북은 물속에서 자기 몸 하나 가누며 살 뿐인데, 자기보다 큰 것이 자기 몸을 덮으니 ‘아이고, 나는 죽었구나.’ 하고는 죽지 않으려 기를 쓰고 물 밖으로 나간 것이지, 용왕의 심부름으로 그 사람을 살린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기도가 너무 흔하게 남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화를 걸 때 아무 데나 걸어서 아무에게나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다. 누구 집인지 정확하게 알고 전화를 해서 대화합니다. 그렇듯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문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고 하셨지만 그것은 빌면 다 된다는 논리가 아닙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 4:3) 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15절부터 20절까지 이어지는 내용에는 용서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죄를 범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여 한 사람이 찾아가고 두 사람이 찾아가 권하다가, 교회의 이야기까지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 취급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권하러 갔던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어야 된다는 부탁을 하시고,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이루신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범죄에 속해 있을 때에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부탁하면 그 사람의 마음도 바뀐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을 내리고 이러한 일을 할 때,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제쳐 놓고 인간끼리 해결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인간의 속단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릴까 봐, 말을 하려거든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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