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2019.06>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005 북미지역 성경탐구모임
2005. 12. 28. 오후 강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1-4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내리니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출애굽기 11:1-7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구별을 해 나가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창세기 1:1-5
빛과 어두움이 다 좋았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운 데서 밝은 것을 분리해 내셨다는 내용이 발표되었습니다. 어두운 데서 밝은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해 가시는 역사 속에 나타나는 모든 일들은 어두웠다가 밝아지는 순서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그러했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신 말씀에는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계시는 하나님의 신성이 드러나 있고 딤전 6:16 참조, 모든 것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세상의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거기서 한 천사장이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사 14:14 고 했습니다. 하나님 위에 앉겠다는 것도 아니고 옆에 앉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겔 28:15 라고 하시며 불의하다고 정의하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세상에 한 번 변화가 있었고, 위의 세상에서부터 떨어져 나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우주와 땅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3-4 하는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 3:5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받을 벌은 너무나 큽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옥을 가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죄 때문입니다.
창세기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어둡다고 하니 불이 꺼진 방을 떠올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땅인지 물인지 흙인지 모래인지 모를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어서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덩어리 같은 모습이 세상을 휘어 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 1:7 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 내용이 위의 물에서부터 아래의 물을 떼어 내셨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탄이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입니다. 위에서부터 이 세상이 분리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 주는 작은 모습으로 창조 둘째 날 궁창 위의 물에서부터 아래의 물이 떨어져 나왔고 중간에 틈이 생겼습니다. 모든 것이 뒤엉킨 상태에서 대기권이 생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창 1:9 고 하셨습니다. 물과 땅을 나누셨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무언가 구분이 되는 사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건들의 발단과, 그러한 일들이 이루어져 가는 이유는 바로 역사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경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애굽에서도 한 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겠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1-2절 
‘이 표적’은 무슨 표적입니까? 병든 사람을 고치고, 수천 명을 먹이고, 죽은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당신은 그야말로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예수를 칭송하면서 눈에 보이는 기적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러한 눈에 보이는 기적, 그 손으로 이루신 표적들은 요술 같은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아주 간단한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고 했습니다. 여기서 흙은 조각가가 손으로 만지는 그런 흙이 아니라 미세한 원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말씀으로 집합시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을 우리 인간에게 발휘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병자들이 병 고쳐 주시기를 바라며 예수님을 따라다녔을 때 예수께서 만져 주시기만 해도 병이 낫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러한 일을 보며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시편에는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139:13-14 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인의 몸속에서 한 생명이 시작되고 자라날 때 주님의 눈길은 그것을 이미 보고 계셨다는 것을 다윗은 부르짖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기에 병자를 만져 주시기만 해도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그 창조주의 손이 물고기와 떡을 나누었을 때,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을 먹었고 배가 불렀습니다. 그냥 모양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음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를 칭찬하면서 그분이 손으로 하신 일, 사람들 눈에 보
정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전체기사와 사진(동영상)을 보실수 있습니다.

확대 l 축소